패션의 완성은 신발
디스크 판정을 받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더 이상 하이힐을 신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통 사고로 병원에 41일(두 번에 걸쳐 입원했다) 있는 동안 당연히 운동화와 슬리퍼를 신고 지냈다. 퇴원하고 집에 와서도 한동안은 외출을 거의 안 했기 때문에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외출하려고 구두를 신고 일어서는데 동시에 찌릿한 통증이 엄습했다. 깜짝 놀라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으려니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날 약속에는 조금 늦었다.
선택 장애가 있는 천칭자리는 아침에 일어날 때 침대의 왼쪽으로 내려설까 오른쪽으로 내려설까 고민한다는 말이 있다. 외국의 책에는 그렇게 쓰여있는데 나의 경우는 전날 밤 혹은 아침에 샤워하면서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고 그대로 입지 못하거나 입었어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 청바지조차 구두 굽을 고려해 길이를 맞춰 입기 때문에 구두를 포기하고 운동화를 신게 되면 바지를 갈아입어야 하고, 그러면 전체 옷 코디를 새로이 해야 한다. 뭐 그까짓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다!
목디스크라고 목이 아픈 게 아니다. 팔이 저리다. 허리디스크의 경우는 다리, 발까지 저리다. 척추 뼈 사이의 척수가 튀어나와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팔 마비 증상까지 와서 운전하다 팔이 툭 떨어져 차를 버리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 한동안 구두를 완전히 포기했다. 키높이 운동화가 있지만 그것도 패션 운동화라 발이 편하지 않다. 굽이 낮은 구두를 신으니 뒤로 갸우뚱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화만 신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8센티미터 통굽을 신었다. 키가 167센티미터니까 한국인 여성 평균 신장보다 좀 크다. 그래도 구두를 신었던 것은 당시 유행도 유행이었지만 친구들이 다 키가 컸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내 친구들은 다 170이 넘는 장신이라 내가 항상 제일 작았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함께 어울리는 친구, 남자 선배들의 경우는 180이 넘었다. 앉아서 이야기할 때는 괜찮은데 걸어가다 돌아보면 얼굴이 아니라 팔이 보이고 목을 빼 쑤욱 올려야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아주 불쾌했다. 학교 앞 건널목을 건널 때면 파란불이 깜박인다고 “뛰어” 해 놓고 그들은 성큼성큼 걷고 나는 열심히 뛰어야 했다. 이런 젠장!
방송을 할 때도 하이힐을 사랑했다. 생방송이라 밤을 새워도 킬힐을 신고 뛰어다니고, 마스카라를 하지 않으면 글이 안 써졌다. 밤샘한다고 운동화에 추리닝 입고 MC와 출연자를 대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상대도 상대지만 나 자신이 추레한 게 싫었다. 본래 여자의 화장과 패션은 자기만족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발이 편한 구두, 발이 편한 운동화면서 굽이 좀 있는 것을 신는다. 최근 미팅이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서 속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 맡은 방송은 토크쇼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시청자가 정말 궁금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처음 만나면 외모와 패션 센스에 눈이 간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옷과 화장,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인사하면서 “작가님 옷 너무 예쁜데요”라고 시작하면 서로 기분도 좋다. 외모지상주의를 욕해도 사람들은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에게 친절하다.
얼굴에 뾰루지는 조직검사와 균 검사 결과 단순 피지 낭종으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회복이 안 되어 스킨 테이프를 붙이고 다닌다.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눈 바로 아래 광대뼈 부위라 사람들마다 물어봐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아침 108배를 하는데 얼굴 부기가 급속도로 빠지는 게 보인다. 의사가 밤에 이완시켜주고 자는 게 좋다고 밤 108배를 권해도 내가 아침에 108배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밤새 굳은 근육을 펴고 얼굴 부기를 빼고,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입고 나갈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오늘도 새로운 사람,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니까.
108배 시즌1 61일 차 _ 2020년 3월 25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