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고택 소요헌에서의 108배
한 달에 한 번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을 한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의 경험과 속사정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것을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또 다르다. 그래서 독서모임은 때로 친구들보다 마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최근 한 모임이 끝나 아쉽지만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의왕에 위치한 고택 소요헌, 그곳을 알게 된 것은 모임에서 만난 언니 덕분이다. 나랑 띠동갑의 언니는 훈민정음 세계화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데 소요헌은 재단의 이기남 이사장님의 별장이다.안동의 조선 후기 고택이 수몰된다는 소식을 듣고 보존을 위해 옮겨 지은 것이다. 당시 150년 된 고택을 옮겨 지은 지가 벌써 50년이 넘었으니 고택은 200년 전에 지어진 것이다. 자그마한 동산과 오솔길을 덧붙여 조선 후기의 양반집을 재현했는데 마당의 풀도 자연스럽게 둔 것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기남 이사장님은 세종대왕의 막내아들 이염, 영응대군의 21대손이다. 이사장님은 선친 경북대 교수 원암 이규동 박사님의 호를 딴 원암 재단과 훈민정음 세계화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백성이 글을 알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던 세종의 마음과 뜻을 이어받아 무음 부족에게 훈민정음 17개 자음과 11자 모음을 통하여 기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올해 초 1997년에 처음으로 훈민정음을 보급한 아프리카 콩고 피그미에 학교와 교회를 건축하여 기증했다고 한다. 알수록 대단하고 멋진 일을 하고 있는 분의 집이라 더 좋다. 이사장님을 보면 단아하고 우아한 얼굴과 자태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언니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가 소요헌에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 9시에 여의도에 일이 있어 새벽같이 일어나 나와야 해서 걱정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몸이 개운했다. 한옥에서 잔 덕분이리라.
108배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20분 정도 절을 하고 아침으로 간단하게 삶은 계란과 샐러드를 먹었다. 여의도에 오는 길, 차가 많이 막혔지만 짜증이 나지 않았다.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108배를 하기에 좋은 매직 존이 따로 있겠냐마는 그래도 200년 고택에서의 108배는 특별했다.
108배 시즌1 61일 차 _ 2020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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