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71일] 혐오와 관용(똘레랑스)

코로나 19 확진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랜만에 미팅도 인터뷰도 없이 집에서 작업하는 날이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108배를 했다.

밥 먹고 일하다 말고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추나를 받았다.

요즘 한약과 추나와 침으로 버티고 있다.

치료를 마치고 옷을 입는데 목 뒤쪽에 침이 하나 남아있다.

간호사를 불러 빼 달라 했다.


“어머 미안해요. 머리카락에 숨어서 안 보였어요.”

“괜찮아요.”

“어머 이해심도 좋아라.”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바로 알았으니 큰 문제도 아닌데, 간호사가 호들갑을 떤다.

한의원 침대 머리맡에 치료 후 남아있는 침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쓰여 있다.


알 수 없는 일이 어디 그뿐일까? 우리는 2020년을 코로나 19 팬데믹의 해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일상이 바뀌고 경제가 요동을 치고 정치도 춤을 춘다.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다. 한동안 바쁘다고 뉴스를 안 들여다보고 살았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졌기도 하다. 2-3월 1차 대유행 때는 정말 집에만 있었다. 그때는 대필 작업을 위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연세가 많으시다. 인터뷰 대상자도 올해 팔순이라 일주일에 한 번 그분의 아파트와 우리 아파트 주차장만 오갈 뿐 친구도 만나지 않고 모임도 나가지 않았다. 5월 이태원 발 2차 대유행 당시까지도 외출을 최대한 자제했다.


현재 레귤러 방송 프로그램 녹화가 진행 중이고 10월부터 홍보와 정부 행사 등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거의 매일 외출한다. 언택트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처리하고, 최대한 자제한다 해도 매일 두세 건의 미팅을 하고 작업을 하니 걱정이 많다.


3차 대유행이 시작된 요즘, 정말 코로나 19가 턱밑까지 온 기분이다. 친구가 코로나 19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는 확진환자와 단 5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 얼마 전에는 남동생 딸이 수학학원에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고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일주일 자가격리를 했다. 때문에 엄마의 생신 가족 모임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녹화 장소가 파주라 집에서 안 막혀도 1시간. 밤새고 녹화까지 너무 힘들어 녹화 전날 스튜디오 근처 호텔을 잡았다. 마침 프로그램에 친구를 섭외했기에 같이 묵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의 아버지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단다. 아버님은 서초동 사우나에 갔었다고 한다. 11일에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고 보건소에서 아버님께 연락을 해온 것은 24일 녹화 바로 전날이었다. 기가 막혔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사람의 동거 가족은, 그와 밀접 접촉한 측근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동생에게 묻고 코로나 19 방역지침을 찾아봤다.


우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 기본이다. 직장에는 동거가족의 상황을 알리고 재택을 할 것인가 여부의 판단은 직장에서 한다. 결국 판단은 제작진, 나와 메인 피디가 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 프로그램의 녹화 현장에는 50여 명이 모인다. 아무리 방역수칙을 잘 지킨다 해도 혹시나 우리 프로그램이 코로나 19 집 단 감염지가 되어버리면 그 낙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녹화를 취소해야 하나? 갑자기 대체할 출연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친구가 출연하지 않으면 녹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도 이미 친구와 접촉을 한 상태다. 만의 하나 친구 아버님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 친구도 나도 바로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정말 아득했다. 바이러스가 진짜 무섭구나.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친구의 아버님도 연세가 70이 넘으셨고, 혈압과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으시니,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지 13일이 지날 동안 증세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면 음성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래도 만의 하나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메인 피디와 의논해 일단 녹화를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 스타벅스나 교회 등에서 확진자와 함께 했어도 마스크와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켜 전파를 막았던 것처럼 우리도 철저히 방역지침을 지켜보자. 아무리 늦어도 녹화 전에는 아버지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현장에서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세정제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손을 소독하고 최대한 아무 물건도 만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슴에 응어리 하나가 콱 막혀 있는 기분이었다. 친구에게도 미안했다. 괜히 내가 그런 아이템을 기획하고 친구를 섭외해서 출연을 고사하는데도 내가 억지로 데려왔다가 이런 일이 생겼으니.. 친구 또한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다 내 탓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하지 않았다면, 그 아이템으로 친구를 섭외하지 않았다면... 그러나 혼자 무인도에 갇혀 지내지 않는 이상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어디에도 없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애꿎은 핸드폰의 뉴스만 ‘새로 고침’ 하며 소식을 기다렸다. 한동안 바쁘다고 뉴스를 보지 않았는데, 그 전 날 우리나라 코로나 19 확진환자 신규발생이 581명이었다. 깜짝 놀랐다. 어느새 이렇게 늘었단 말인가. 한편,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아니면 내가 그토록 친구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할 수 있었을까 싶게 간절히 아버지의 음성 판정을 기다렸다. 정말 끔찍한 하루였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다. 족쇄가 풀린 기분이었지만 하루 종일 그리고도 한참 동안 많이 힘들었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이 참을 수 없이 힘들었다. 지하철에서 기침했을 때의 시선과 또 달랐다.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어 가끔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나올 때가 있다. 봄에 지하철을 한 번 탔다가 기침을 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옷소매로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나를 째려보는 시선이 정말 무서웠다. 이후 나는 버스나 지하철을 탄 횟수를 손에 꼽는다.


상황 설명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로 갈렸다. 혐오와 이해. “멀리 떨어져!”와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럴 수 있지” 대부분은 전자였고 후자는 적었다. 잠깐의 걱정에도 이러니 실제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은 어떨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 날, 차단기가 내려가 조명이 꺼지기를 수차례, 오디오 주파수 교란으로 재녹화하는 등 온갖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때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사람들은 “방송이 대박 나려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제가 코로나로 걱정 끼쳐서 그렇습니다.”를 외쳐댔다. 피디는 내게 “충북 음성으로 꺼져”라고 농을 쳤다. 겉으로 웃었지만 정말 힘든 날이었다.


그 날 이후 하루 500명 내외의 신규 확진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까지는 실내 집합 50명 이하라 녹화가 가능하지만 3단계가 되면 실내 집합 10명 이하만 허용되기 때문에 녹화가 불가하다. 처음엔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까 안절부절못하다가 차라리 3단계, 혹은 그 이상의 봉쇄 조치로 바이러스를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수능은 치러야 해서 경제 침체 때문에 거리두기 단계 조정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주 녹화는 월요일이다. 격주 수요일에 녹화를 진행하다가 이번에는 출연자들의 스케줄 때문에 바뀌었다. 내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3단계로 격상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격상되어 녹화가 취소되기를 바란다.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불안할 때는 108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절을 하고 호흡에 집중하며 생각했다. 내일을 걱정해서 무엇할 것인가. 당장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지금 여기서 내가 가장 행복한 일, 좋은 일을 하자. 어차피 내일 일은 내일이 되어야 아는 것. 그리고 다짐했다. 혹시나 내가 혹은 주변의 누군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걸려도 그를 혐오하지 말자. 그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가장 힘든 것은 바로 그다. 도울 수 있는 일은 돕자. 그 일은 바로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똘레랑스, 관용의 마음은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108배 시즌1 71일 차 _ 2020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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