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107일] 세종은 왜 별을 연구했을까?

왕의 별자리

요즘 새벽 4-5시쯤 자서 12시쯤 일어난다. 일어나면 카톡과 메시지–대부분은 광고 스팸이지만-를 확인하는데 오늘은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깼다. 아닌 척했지만 편집장님은 알았을 것이다. 교정지를 보내준다고 하기에 108배를 하고 반신욕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교정지가 내게 왔다. 교정지는 처음이라 떨린다. 어려서부터 나의 꿈, 내가 저자인 책 한 권이 이제 곧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나의 원고를 다시 읽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는 역시나 황소자리 세종이다.


왕의 별자리 교정지, 떨린다. 307쪽,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조선의 왕 중 유독 고기를 사랑한 왕은 세종이다. 오죽하면 태종은 “주상은 고기가 아니면 진지를 들지 못하니 내가 죽은 후 권도를 좇아 상제를 마치라”는 유언을 남겨 자신의 상중에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배려했을까. 세종은 1397년 5월 7일생으로 태양 별자리가 황소자리고 달 별자리는 처녀자리다. 오감이 발달한 황소자리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은 눈과 코와 귀, 입과 혀를 넘어 내장까지 완벽하게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함길도의 화주和州에 흙이 있는데, 빛깔과 성질이 밀[蠟]과 같았다.

굶주린 백성들이 이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으매,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는데, 그 맛은 메밀[蕎麥] 음식과 비슷하였다.

-≪세종실록≫ 19권, 5년(1423) 3월 13일


당대에 이미 해동요순海東堯舜으로 불렸던 세종이지만, 즉위 후 10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다. 굶주린 백성들이 흙을 파서 먹을 정도였다니 황소자리 세종은 더욱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슈퍼컴퓨터로 날씨를 예측하는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기상예보는 틀리기 일쑤다. 태풍의 진로는 번번이 예측을 벗어나고, 천재지변에 속수무책 당할 때도 많다. 농업이 산업의 근간이었던 조선 시대에 날씨는 지금보다 중요했다. 천재지변은 모두 왕의 잘못이라 가뭄에는 기우제를 지내며, 왕이 직접 ‘내 탓이오’를 외치는 반성문을 썼다.


중국에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 진시황 26년(B.C 221)부터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중국의 달력을 사용했다. 중국은 제후국에 책력을 하사하고, 독자적인 역법 연구를 금했다. 우주의 운행질서는 천자의 전유물로 역법과 천문은 제왕의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종 이전까지, 그리고 일본은 1873년 서양의 태양력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중국의 달력을 따랐다. 그런데 중국의 책력을 받아 쓰다 보니 중국과 우리의 하늘이 달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일식 예보 시각이 틀리면 곤장을 맞거나 옥에 가두던 때니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세종은 천문, 지리, 역법 등을 관장하는 서운관書雲觀을 설립했는데, 총책임자가 영의정이었다. 오늘날 국무총리가 천문대장과 기상청장을 겸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하늘에 맞는 우리 고유의 달력을 만들었다. 그 집대성이 ≪칠정산七政算≫이다. ≪칠정산≫은 1년을 365.2425일로 계산하고, 한 달을 29.5903일로 계산할 정도로 정확했다. 조선이 독자적 달력을 갖게 된 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는 것만큼이나 큰 혁명이다.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년, 허진호 감독)에서도 신하들이 중국을 겁내는 모습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칠정산≫이 중국에 알려질까 두려워 달력 제작을 금지했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요,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다.”

- ≪세종실록≫ 86권, 19년(1437) 7월 23일


세종대왕과 함께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영웅 이순신도 황소자리다. 육군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수군으로 발령받은 그는 망망대해에서도 먼저 섬에 둔전을 설치하고 군대의 먹거리부터 해결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로 유명해진 전남 고흥과 보성 사이의 섬, 득량도得粮島가 이순신이 식량을 얻은 곳이다. 미국의 역사가 폴 케네디Paul Kennedy가 “비전과 애국심으로 모두를 감동시킬 줄 아는, 뚝심 있고 부지런한 리더”라고 평했던 트루먼 대통령도 황소자리인데, 미주리 주 시골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농장에서 일했다.


조선 개국 30년, 나라의 기틀을 확립해야 할 시기에 황소자리 왕, 세종이 있었던 것은 하늘의 뜻이었을까? 세종은 절대왕권의 조선에서 신하와 의견을 나누고 백성들을 돌아보며 현장에서 답을 찾는 진정한 애민군주였다. 천하의 중심 중국에 반反하더라도 중심을 잡고 우직하게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었다. 우리 하늘을 열고, 우리 땅에 맞는 농사법을 발전시키고, 우리말에 맞는 편하고 쉬운 우리글을 만든 세종의 업적은 모두 조선을 중심에 두고 조선 고유의 것을 만든 것이다. 조선은 개국부터 중국의 제후국을 자처했지만 독립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은 황소자리 세종이 밥심으로 조선의 하늘을 열고 조선의 언어를 만든 덕분 아니겠는가.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또 그 변화에만 맡기고 게을리하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별자리와 개인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별자리의 의지와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시대와 문화적 흐름을 타고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별들이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다. 별들과 우주의 리듬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더 강력하게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며칠 기분이 바닥을 치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내 책을 내가 읽으며 길을 찾는다. 어쨌든 교정지로 책의 꼴을 갖춘 내 원고를 보니 307페이지다. 열심히 읽고 또 읽고 고쳐 쓰자!


108배 시즌1 107일 차 _ 2020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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