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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그라시아스 Gracias

Plan is just Plan


“어제 영어로 꿈을 꾸었어, 넌 스페인이 세 번째라며 스페인어는 좀 해?”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태현이 은수에게 물었다.     


“올라 Hola, 그라시아스 Gracias 두 단어면 되지 뭐.”     


은수가 알고 있는 스페인어는 ‘안녕’이라는 인사말, ‘올라 Hola’와 ‘고맙습니다’, ‘그라시아스 Gracias’ 그리고 숫자 Uno (우노, 1), Dos (도스, 2), Tres (트레스, 3), Cuatro (꺄트로, 4) 정도다. Cinco (씽코)가 5였던가부터 헷갈린다. 태연하게 말하는 은수를 태현이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그녀는 해맑게 말한다.     


“이번에 배워볼까?”     


“그래, 현지에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르지.”     


입국장 앞에서 은수는 태현에게 “아디오스 Adios (잘 가)” 인사한다.           




역시, 은수가 부르고스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올라 Hola, 그라시아스 Gracias 두 단어다. 하지만 그녀가 나혜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스페인어는     


“로 씨엔또 노 아블라 에스파뇰

Lo siento! No habla Español.

미안해요, 저는 스페인어를 못해요.”     

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해도 온갖 손짓발짓을 동원해 한참을 붙잡고 이야기한다.      


17년 전에는 은수가 “Soy Coreano.” 나는 한국인이라고 “Soy de Corea”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꼬레아가 어디야? 혹은 “북에서 왔니, 남에서 왔니”라고 물었다. 물론 아직도 “Northe o Sur(북에서 왔니 남에서 왔니)? 묻는 이들도 있지만 이어서 여기 한국인 페레그리노 정말 많은데 북에서 온 사람은 없다며, 김정일과 김일성이 어쩌고저쩌고 길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을 떠나면 비로소 한국이 보인다더니 봉준호의 <기생충>과 BTS, 오징어게임까지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은수는 비로소 실감한다. 스페인은 유난히 많은 한국인 페레그리노들 덕분에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맛있어요.” 정도는 하는 현지인과 외국인들도 많다. 게다가 올해는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 작가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도 최초다. 그야말로 꼬레아의 힘을 느낀다.     


그래도 부르고스에서 지내려면 스페인어가 필요하다. 은수는 어느 순간 생각했다. 더 이상 ‘올라’와 ‘그라시아스’, ‘페르돈’과 ‘로 시엔또’ 만으로 버틸 수는 없다고.      




“우리 한식당에서 일해보는 거 어때?”     


은수는 어학원을 알아봤다. 무니시팔(공립) 어학원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고 한두 달의 단기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루에 두 어 시간이라 딱 좋은데, 신청 기간이 지났다. 사립 어학원을 단기로 다니는 것은 너무 비싼 데다 매일 4시간 이상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1년 코스의 사립 어학원은 비자까지 나온다고 했으나 한국에서 신청하고 왔어야 했다. Plan is just plan!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부르고스에서 일주일 만에 은수는 17년 전 까미노에서 배웠던 가장 큰 삶의 진리를 다시 깨닫는다.      


“정식으로는 안 되고, 자원봉사! 페레그리노랑 이야기도 하고 실전으로 스페인어도 배우고.”     


그녀는 나혜의 제안이 나쁠 게 없었다. 아니 좋았다. 식당일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서빙이야 뭐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나혜의 한식당의 까마레로 camarero (종업원) 모모는 은수가 일하기 시작한 둘째 날부터 그녀의 에스파뇰 프로페서가 되었다. 모모는 모로코에서 태어났는데, 아랍어와 영어를 잘하고 불어도 조금 한다. 스페인에 온 지 2년 됐는데 스페인어도 잘한다.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 한국어도 조금 하는, 그러니까 모모는 언어 능력자다.      


“굿 잡 이즈 에스파뇰 Good job is Español?”     


틈날 때마다 은수가 모모에게 묻는다. 더듬거리는 영어와 한국어가 섞이기도 한다.     


“굿 잡, 부엔 트라바호 Buen trabajo!”     


한국인 손님이 많아서 은수가 주문과 서빙을 하는 동안 모모가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그래서 은수는 수고했어, 말해주고 싶었다.     


“모모, 부엔 트라바호 Buen trabajo!!”     


“그라시아스 Gracias.”     


은수는 영어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 손짓이나 한국어를 섞어서 묻기도 한다.      


“음.... 디스 이즈 에스파뇰 Um, this is Espanol?”     


“트라뽀 trapo(행주, 헝겊, 조각, 눈송이)”      


그래도 모모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알려준다.      


은수가 <두 번째 소풍>에서 일한 첫날, 모모는 그녀에게 말을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그는 낯가림이 심했고, 여자친구인 한국인 예진이 마드리드로 여행을 떠나 외로웠다. 곧 한국으로 갈 그녀가 친구와 일주일 여행을 떠나니 특유의 샤이함이 더해졌는데 사장인 나혜가 은수와 한국어로 자꾸 말하니 더 말이 없었던 것이다.

     

“모모, 트라뽀 포르 파보르 trapo, Por Favor”     


은수는 배운 말을 바로 써먹는다. 모모가 바 안에서 행주를 집어 은수에게 건네준다. 모모는 모로코 사람이고 이름이 모하메드 블라블라~ 엄청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냥 모모라고 부르라 했다. 은수는 로맹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의 모모를 떠올렸다.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나 퇴역한 창녀 로사 아줌마에게 맡겨진 모모,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하말 할아버지에게 심드렁하게 묻는 모모.     

 

은수는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정리하자 모모가 말한다.     


“누나~ 부엔 트라바호 Buen trabajo!”      


모모는 은수를 누나라고 부른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muchas gracias (정말 고마워)”     


“데나다 De nada (천만에요).”     


그는 역시 좋은 에스파뇰 프로페서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생각하고 행동하면 디테일은 달라져도 큰 그림은 대개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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