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보
“A camera feels like an extension of who I am, of my arm and hand. (카메라가 나와 한 몸이 된 것 같아요. 내 팔과 손의 연장처럼 느껴져요)” 올해 4월에 관람했던 사진작가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개인전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 문장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그녀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Why do you love what you do? (왜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가?)”하는 질문의 대답이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사진으로 순간을 포착하는 행위에 빠져드는 일이 자신에게 그만큼이나 편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맥락에서 한 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비유적 표현 너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프레이타스는 직접 찍은 사진의 색감과 구도 등을 후보정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광경을 새로 창조해낸다. 그녀의 사진 속 장소들은 그런 방식으로 구체적인 실제와 환상 사이 그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또한 그 사진들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여러 사람과 공유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이야기했지만 그뿐만 아니라 사진을 보정하는 프로그램, 컴퓨터, 마우스, SNS, 인터넷이 사실상 모두 그녀의 연장된 손이다. 그를 통해 그녀는 새로운 광경을 창조하고, 직접 닿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다가가 소통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인간 프레이타스로서 예술가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여러 기술, 기계와 결합된 사이보그로서 예술가인 것일까?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폰을 켜고 앱에 들어가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본다. 나는 그 사진들을 직접 매만지진 못하지만 화면을 눈으로 더듬으며 사진을 경험하고, 기억하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새로운 애착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존재의 경계선을 내 몸의 가장 바깥쪽인 ‘피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직접 닿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손을 뻗고, 그들을 더듬는다. 그렇다면 실은 아이폰과 노트북은 우리의 연장된 손이며 감각기관이다.
프레이타스의 경우가 보여주듯 인간이 손으로 하는 가장 섬세한 활동이자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져 왔던 예술조차도 이제는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배제하고는 논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는 인공지능도 시를 쓰고 작곡을 하며 그림을 그린다. 따라서 ‘손’에서 출발한 질문은 점차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어디인가? 탁월한 예술가가 모두 탁월한 인간-기계에 속하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인가?, 로봇은 예술가로 인정될 수 있는가? 와 같이 다양한 논의들로 확장된다. 정해진 답은 없으나, 그렇다고 혼란에 허우적댈 필요도 없다. 글을 읽는 동안 아주 자그마한 사유의 실마리라도 떠올랐다면, 당신의 두 손으로 그것을 단단히 붙들고 쉽게 놓아버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