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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azine WEAVE Sep 24. 2022

손끝 너머의 시간

글. 노을

Photo by Morgan Housel on Unsplash


 책장 위에 올려진 책을 잡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가? 우리는 아마도 책을 향해 손을 뻗어 목적한 바를 수행할 것이다. 신경로를 타고 이동하는 전기신호와 근육의 움직임에 수반되는 관절의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진 일련의 ‘단순 작업’일 수도 있으나, 책을 잡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자아의 ‘주체성’일 수도 있다. 또한 책 겉면에서 느껴지는 질감, 무게 그리고 크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뇌 속의 작은 인간 ‘감각 호문쿨루스’가 괴이할 정도로 큰 손을 갖고 있음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과적으로 손은 우리의 작업 환경의 범위를 확장하고 개체를 둘러싼 감각의 문호를 넓히며 주체성 표현의 매개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지점에서 손이 ‘사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해보려고 한다.


 지구상의 개체가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로 ‘시간’이 떠올랐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시간은 얼핏 보기에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성’을 지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반론이 존재한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이동하는 로켓 안에 있는 우주비행사의 시간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그의 아들에 비해 느리게 흐른다. 물론 지구상에서 이러한 차이는 미미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시간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 상대성이론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물리적 ‘시계시간’은 동일하게 흐르는 듯해 보이나, 우리가 느끼는 바는 사뭇 다른 것 같다. 피터 맹건 교수는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연령별 실험 참가자들에게 눈을 감고 3분이 지났다고 느껴질 때 스톱워치를 정지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는 젊은 연령층은 근접하게 시간을 맞췄지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오차가 커졌다는 것이다. ‘마음시간’은 감각기관의 자극으로 생성된 일련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미지 변화 간격이 ‘마음시간’의 속도를 결정하는 변수이다. 나이가 들수록 반복되는 일상은 이미지의 변화를 주기 어렵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의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와 ‘마음시간’의 상관관계 속에서 논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새로운 경험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해라’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 소홀한 적은 없는가?’라는 ‘소고’를 소개해보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시선 끝에 놓인 물체에 ‘손’을 내밀어 ‘눈’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껴보길 바란다. 단순한 촉감부터 존재성의 인식, 이를 거쳐 사유의 소요(逍遙)를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획일적인 사고와 이념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 귀찮아진 사피엔스는 손바닥 안에 담기는 스크린을 통해 세상을 굽어보고자 한다. 시간의 한계성 속에서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마음의 시침은 사피엔스의 유한성을 시나브로 옥죄어 갈 것이다. ‘지식’을 습득함에서 오는 유희에 관성적으로 만족하지 않고, 손을 뻗어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를 추구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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