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요일 Oct 15. 2022

작고 독한 그것

나 탐구생활

어느 날, 그것이 내게 왔다. 

작고 그것.

어떤 느낌도 없고

어떤 형태도 보이지 않는 그것.


너무 작고 작아서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보이는 그것.

그것이 결국 내게도 오고 말았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은 말했다.

차분하고 온화한 말투로

그것을 잘라내야 한다고.

그냥 두면 내 목에서 천천히 자라

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아주 작은 것이라

잘라내기만 하 괜찮을 거라했다.

그건 바로 암이었다.


그 무서운 말이 내 귀에 들어왔고

내 심장을 지나갔고 

아주 천천히

내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뜨거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서있을 뿐,

숨을 쉬기 힘들 만큼 뜨거운 은 계속 흐르고 누군가 나를 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따뜻한 한마디가 필요했.

서둘러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고,

보고 싶은 지인들 번호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겨우  한마디 내뱉는.


나, 암 이래. 갑상선암


누군가는 고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했다.

누군가는 소리 없이 같이 울었으며

누군가는 정말 속상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언제든 힘들면 전화하라고 했고

누군가는 자기도 그것에 걸려 이겨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작은 것이라고 해서

지금 당장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해서

흐르던 눈물이 금방 마르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당혹감에

생경스러운 두려움에

어찌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왠지 모를 분노에 

한동안 내 안의 뜨거운 물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수많은 위로와

수많은 공감과

수많은 포옹과

수많은 이해의

시간을 쌓은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머리로 입력된 정보가

가슴으로 내려와 품을 수 있기까지는

결국 많은 시간, 위로와 힘이 필요했다.


어린아이처럼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고,

철부지 같은 엄살을 부리고 나서야

가라앉은 '슬픔'의 말이 '위로'의 사다리를 타고

'인정'이라는 작은 언덕을 올라설 수 있었다.


머나먼 여정의 첫 발을 떼었을 뿐이지만,

이제는 더이상

바보처럼 혼자 울지 않으려고 한다.

떨리는 내 손을 잡아 달라고

기대어 쉴 수있는 품을 내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고

생존을 위한 신호를 똑똑히 보내기로 다.


작고 독한 그것이

크고 강한 힘에 밀려나

뿌리가 뽑히고

지독한 생존력을 잃은 

하얀 백기를 들 때까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저만치 물러나는 것을

단단히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막 내 인생의 2막이 시작이 되었을 뿐,

작고 그것을 몰아내기에  좋은 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바로 여기, 일상을 여행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