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 예전에는 손도 안대던 원색의 쨍한 색 옷을 입고 나갈 때가 많다. 언제였을까.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과감히올려봤다.한동안 연락이 없던 동네 엄마가 말을 걸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나마 톡수다를 즐긴다.
편한 나를 만나 반가워.
I'm a diamond. (by Go)
밖에 나가면 가로수길의 단풍이 곱다.가을볕이은은하게퍼져천천히 길을 걷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랜만에 지금이라는 시간에 온전히 나를 맡긴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지나가는 바람과 바뀌는 계절을 모두느낄 수 있어좋다. 몸은 느리고 때로는 주저앉아야 할 때도 있지만 고맙게도 멈추고 나를 바라볼 시간을 얻게된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나를 찍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해서 일까. 얼굴빛이 밝아졌다. 나도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예전에는 아무리 진하게 화장을 해도 칙칙한 얼굴빛을 가리긴 힘들었다. 최근에는 누구 하나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크게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어서일까. 화 낼일도 참을 일도 별로 없다. 그저 매일 내 몸의 상태를 살피다가 아프면 병원 가고 힘들면 누워있으면 될 뿐이다.감사한 일상이다. 소위 말해 인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나 자신만을 돌보는 요양을 하고 있다.편안한 내 모습이 반갑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는다. 내 안의 예술가를 찾아내는과정을 안내하는 책이다. 매일 아침 내 생각을 관찰하고 "모닝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내 생각을 적는다. 작고 사소한 고민, 매일 느끼는 일상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 그리고 때때로가까운 곳을 여행하거나 미술관, 음악을 감상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아티스트 데이트"를 실천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내 모습을 직면하고 살펴보는 연습을 한다. 그래서였나. 어느 순간부터 내 핸드폰 갤러리에는 아이들 사진, 풍경사진 보다 나를 찍은 사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를 찍어주는 사람들
이제 출발해요. 10분 후에 집 앞으로 나오세요.
운전도 못하는 데다가 아픈 허리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든 나를 살뜰히 챙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까지 난 항상 내가 먼저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곁의 사람들이 내게 먼저 안부를 묻고, 좋은 병원을 찾아주거나, 허리 치료에 좋은 영상링크를 보내고, 내 집 앞에 찾아오거나, 기꺼이 차를 운전해 나를 데려다주고, 맛있는 밥을 사주고, 카페에서 음료를 가져다주고좋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기도한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고맙다. 그리고 어색하다.
나를 찍어준다. 아름다운 풍경에 멈추어선 나를 포착해 멋진 사진으로 담아낸다. 내가 누군가의 카메라 속에서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찍힌 나를 보는 건 지금도 적응이 안 되긴 하지만.
나를 직면할 용기
거울 보는 것을 싫어했다. 사진 찍는 것은 더욱 싫었다. 그랬던 내가 나를 찍고 보고 감상하고 카톡 프로필에 내 모습을 올릴 용기까지 낸 것이다. 카톡에 자기 사진을 올리는 것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검색하고 찾아내 사생활을 캐내지 않을까 김칫국을 마시며 조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나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쁘고 멋지진 않지만 밝아진 내가 좋다.
긴 휴직에 내 소식이 궁금한 지인들에게도 잘 지내고 있는 내 사진으로 대신해 안부를전해보면어떨까.'저,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을 건네듯밝은 표정을 골라 프로필 사진으로바꿔올린다.신기하게도 초등동창이나 제자들이 오랜만에 카톡으로 인사를 건내기도 한다.진짜놀라운 일이다.
나를 직면하고 좋아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 안에서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너. 관종이야? 네가 뭐가 이쁘다고. 다른 사람이 니 사진 캡처해서 퍼 나르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 내가 뭐 어때서?
당돌하게 말하고 웃으며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내 모습을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는 다면 누가 좋아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불현듯 띵! 하고 머리를 치는 순간 용기 낼 수 있었다.
Masterpiece by Go
지금은 잠시 멈춘 것 같지만 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일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그저 집과 동네를 어슬렁거릴 뿐이지만 나는 더 많이 나를 이해하고 더 많이 고민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있다. 문득,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몸은 묶여있지만 쓸데없이 머릿속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있으므로.
고작 카톡 프사 하나에 오만가지 의미부여를 하는 진지충이지만 적어도 어제 보다 나를 더 알아낸 내가, 조금 더 나를 사랑하게 된 내가기특하다. '잘했어'라고 말해주고 등이라도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밤이다.혹시 다른이들에게 실수할까, 욕먹을까 두려워 스스로를 단속하고 다잡던 지난 날의 내가 이제야 비로소 편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