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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02. 2023

중요한 건 물조절 아니 힘조절!

<중년의 진로수업>

일주일에 한 번

온라인 클래스에 접속한다. 작은 책상에 막내딸이랑 나란히 앉아 주섬주섬 준비물을 꺼내고 펜과 물, 붓을 준비하고 팔토시도 새로 장만해서 경건하게 수업에 임한다.


 준비물 준비완료!

감성 수채화

 이번에 수강시작한 강좌는 이름하여 "플러스펜 감성 수채화" 수업이다. 재작년에 색년필 수업에 이어 두 번째로 도전하는 그림수업이다. 그림을 그리면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따라가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처음에는 서툴지만 1, 2회 수강 횟수가 늘어날수록 눈에 보이는 실력차이가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수업 막바지에 다다르면 액자에 넣어 전시해도 제법 근사해서 때때로 용기 내어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서툴지만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의 새로움이 또 다른 즐거움 전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오늘은 5번째 수업을 듣는 날.

선인장을 스케치해서 그리고 플러스펜으로 공간을 채운다. 붓에 물을 묻혀 플러스펜을 칠한 자리를 쓱~쓱~ 칠해주면 오묘하게 색이 퍼지면서 청량한 느낌의 수채화가 만들어진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필기할 때 플러스펜을 사용하곤 했다. 어쩌다가 실수로 먹던 차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노트전체에 색이 퍼지고 지저분 해져서 짜증을 내곤 했었다. 오히려 그런 퍼짐이 그림에선 양감과 명암을 표현하는 중요한 성질이 되어  색의 표현을 다양하게 낼 수 있게 만드니 신기하기만 하다.


"잘 스며드는 성질"

이런 성질은 어떤 때는 참 좋았다가 어떤 때는 참 보기 싫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 성질을 쓰느냐에 따라 꼭 필요한 성질이 되기도 참 귀찮은 성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남모르게 스며들고 지나치게 남들 상황에 감정이입하여 스며드는 나는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미처 말 못 하는 심정을 알아차리는 데는 특출한 재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때때로 지레 짐작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섣부른 상황파악으로 자세히 묻지도 않고 화를 내거나 낙담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난감하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공감능력이란 것이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물조절, 힘조절

수채화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하는 은 아마도 물조절일 것이다. 펜의 색깔과 물의 농도가 적합하게 맞아떨어졌을 때 가장 멋진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사람사이의 관계마찬가지일 것이다. 적당히 공감하고 생각할 것. 다른 사람의 일에 깊게 개입하거나 짐작으로 어설픈 조언하는 실수를 범하 나의 색이 상대에게 스며들어 상대의 색을 잃게하게 되니까 서로의 색을 가장 이쁘게 낼 수 있는 뽀송하고 상쾌한 정도의 촉촉함만으로 적절하게 소통하는 힘을 적절히 발휘해야한다. 끈적이지 않게 사람 간의 힘과 거리를 조절하는 일나이 오십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어려운 숙제다.


 물통에 붓을 넣었다 뺐다 하며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펜으로 채색된 그림에 몇 번 물칠을 한다. 몽글몽글 초록이면서 맑은 푸른색이 보기 좋게 흩어지고 퍼지면서 마법같은 색을 만들어낸다. 노랑이면서 연두색인 것에도 물 방울을 떨어뜨린다. 물이 펜의 색에 스며들어 선으로 채워진 면이 색으로 채워지며 밋밋한 선인장이 풍성한 입체감으로 완성된. 이렇게 물조절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사람 간의 힘, 거리 조절도 잘되겠지 하는 허튼 기대를 해본다.  스스로 어이없다 생각하고 텅 빈 미소 한번 지으며 완성된 그림을 뿌듯하게 바라본다. 딱 알맞다! 적어도 내 눈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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