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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13. 2021

혼밥을 좋아하시나요?

나 탐구생활

언제나 사람들과 있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진다. 무작정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고 미술관에 가거나 커피숍, 도서관을 가고 종종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혼자 밥을 먹기도 한다.

아이들 셋, 부부까지 합쳐 5인의 밥을 매일 차려 내놓는 것은 어떤 날은 재밌다가 어떤 날은 지겹다가 어떤 날은 놓고 싶기도 하다. 특히나 주말엔 세끼를 꼬박 챙겨야 할 때는 난감하기만 하다. 슬쩍 한두 번은 배달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해보기도 하지만 매 끼니 생각하는 건 온전히 엄마의 몫, 이런 부담이 벅찰 때도 있다.

가족과 너무 행복하고(?) 복작거리는 그런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 가끔 혼자 밥을 먹으러 가곤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조용히 생각해보고 메뉴를 고르고 주문하고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씹어 먹는다. 그리고 설거지 하거나 치울 걱정하지 않고 돈을 계산하고 바로 나온다. 이럴 때는 왠지 모를 해방감과 내가 돈을 냈지만 그간 밥 차리느라 고생한 수고를 보상받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해가 반짝하고 하늘이 맑은 날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스콘과 쓰고 따뜻한 커피가 생각난다. 이럴 때는 조금 용기를 내서 부암동 스콘 맛집 'Sco**'엘 간다. 가는 길이 제법 멀지만, 인왕산 자락이 보이는 부암동의 조용함과 근처 미술관까지 함께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떠올리면 가는 길이 힘들지 않다. 부슬부슬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날엔 뜨근한 쌀국수가 생각난다. 진하게 우려낸 고깃국물에 듬뿍 쌓아 올려먹는 숙주의 아삭함. 그리고 초절임 양파에 얇게 썬 고기를 면과 함께 한 입 크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한 그릇 싹 비우고 재스민 차로 입가심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떤 날은 힘이 없고 축 처지고 바닥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갈 정도로 다운되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무조건 초밥이다. 그냥 초밥이 아니라 연어 초밥. 소하 상업지구 안에 있는 김*언스시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간다. 이 집은 무언보다 샐러드와 우동 혹은 짬뽕이 서비스로 같이 나와서 초밥 한 접시만 시켜도 대접받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주문하자마자 바로 요리사가 만들어 주는 스시는 신선하고 큼지막한 회 한 점에 쫀득한 밥의 식감이 끝내준다. 초밥 한점 먹고 시큼하고 달짝지근한 락교 하나를 아삭 씹어먹고 뜨끈하고 고소한 장국을 한 입 넘기면 축 쳐졌던 기분이 금세 녹아내려 좋아지곤 한다. 게다가 갖가지 채소에 소스를 살짝 뿌리고 망고가 간간이 박혀있는 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면 상큼한 기분이 쫙~ 퍼진다.

혼자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같이 먹는 즐거움만큼이나 혼자 밥을 먹으면 좋은 점이 무진장 많다. 첫째, 입맛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거나요. 전 상관없어요.'라고 할 필요가 없다. 아이 키우면서 매운 거 짠 것 빼고, 건강한 것 고르고, 애들 싫어하는 것 제외하고 나면 나의 선택지는 사라지고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고르고 선택해 주문한다는 것이 엄청난 사치며 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천천히 꼭꼭 씹어서 맛을 음미할 여유가 생긴다. 점심시간을 살짝 피한 늦은 오후쯤 식당에 가면 한산한 가운데 조용히 나만의 식사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집에서 식구들과 먹으면 먹는 중간중간 음식 덜어주고 물 챙기고 쏟아진 것 닦고 골고루 먹어라 잔소리하며 정신이 없다. 먹는 일이 먼저인지 애들챙기는게 먼저 인지 모를 정도다. 이런 장면에 비하면 혼자 먹는 것은 심플함과 평화 그 자체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음식과 맛이 있다니!' 새삼스런 깨달음에 가슴이 벅찰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내가 원하는 음악을 틀고 감상하면서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이 크고 나니 각자 취향이 다양해져서 음악 하나 틀라 해도 '이건 좋다, 이건 싫다. ' 의견도 다양해서 별 것도 아닌 일로 싸우고 다투고. 결국, 화를 내며 '듣지 마. 그냥 밥 먹자.'하고 끝내기 일쑤다. 혼자 밥을 먹으면 클래식이든 가요든 내가 원하는 음악을 끝까지 감상하며 밥을 먹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애들은 등교하고 찾은 잠깐의 여유를 누린다. 밀린 빨래와 잔뜩 쌓인 설거지는 외면하고 듣고 싶었던 이적 음악을 틀고 '오늘은 뭘 먹을까? 핸드폰 검색창에 맛집이나 검색해볼까?' 즐거운 고민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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