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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Oct 03. 2023

높이 날지 않는 새

<중년의 진로수업>


연휴 끝 새벽

한강변 산책로를 걷는다.

저 멀리 희미하게 해가 뜨고 있는

붉은빛, 푸른빛이 어우러져 곱다.


지난밤 긴 축제의 여운은

여기저기 뒹구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춤을 춘다.

흘려놓은 맥주의 시큼한 냄새는 새벽녘의 상쾌함을 보란 듯이 덮어버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청소차량 뒤로

노숙인은 먹다 남은 과자봉지를 찾아내어 우걱우걱 씹어먹고 있다.

길바닥에 뒹구는 전단지처럼 예상치 못한 아침풍경에 나의 시선도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사람키보다 낮게 날며 먹이를 찾는

날 짐승들은

거추장스러운 긴 날개를 퍼득인다.

땅바닥에 부리를 처박고 너도나도 똑같이

인간이 남긴 먹거리를 주워 먹느라 대가리를 주억거리면서.

까치도

까마귀도

비둘기도

갈매기도

매한가지다.


먼 옛날 바다 위를 활공하며 우아한 자태를 뽐냈던 시절을 갈매기는 기억할까.

높은 나무 위에 앉은 까치도 한때는 저 멀리 구름에 닿을듯한 높은 곳에서 복작대는 인간사를 보며 코웃음 쳤겠지.

산 위로 숲 위로 검은 날개를 펼쳐 보이던 까마귀의 고귀한 비행도

한때는 평화를 상징했던 귀한 마스코트 비둘기도

이젠 모두 똑같이 땅바닥에 대가리를 처박고 먹이를 찾아 잰걸음을 할 뿐이다.


더 이상 높게 날지 않는다.

더 이상 멀리 날지 않는다.

날짐승들도

인간들도

모두 똑같이 땅바닥만 보고 살아간다.


이른 새벽 낮게 나는 새들사이로

한 번도 날아 본 적이 없는 나는

한때 높이 날았던 것들의 높은 활공이 애잔한 추억이 되어버릴까 안절부절하고

누구에게도 들리지않 혼잣말을 하며

쓰레기만 뒹굴거리는 텅 빈 거리를 하릴없이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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