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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30. 2024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여자

구해줘요. 메리포핀스!

콜록콜록


막내 아이가 밤새 기침을 한다. 아이 뒤척이는 움직임에 새벽부터 잠이 깼다. 상비약을 꺼내 먹이고 상태를 살핀다. 겨우 일어난 아이는 내게 말한다.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냐고.


응. 많이 아파?
근데 집에 있으면 돌봐줄 사람이 없는데 어쩌지? 좀 더 생각해 보자.
뜨거운 물 마시고 좀 누워있어.




누룽지를 끓여놓고 보리차를 데워 보온병에 담아둔다. 기침감기약도 챙겨놓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아픈 아이를 위한 것들을 주르륵 식탁 위에 일렬배치해 둔다.


내가 막내 돌볼게


둘째 아들의 세상 스위트해 보이는 멘트, 하지만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다 계획이 있다. 학교 하루 안 가고 쉬고 싶은 숨은 열망이 있었던 것. 말해놓고 자기도 멋쩍은지 배시시 웃고 있다. 말은 고맙지만 정중히 사양한다. "응. 고마운데 오늘은 엄마가 어떻게 해볼게. 오빠는 학교 다녀오세요~"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아이는 영 기운을 못 차린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하며 큰 소리로 아이를 깨우는 남편. 어쩔 수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오늘따라 그 말이 차갑게만 들린다.


아픈 내 아이를 두고 다른 집 아이를 보러 출근해야 하는 교사라는 직업, 이런 순간이 가장 괴롭다. 전화로 교감선생님께 사정을 얘기하면 급한 데로 수업도 바꾸고 지각(지참) 출근 처리도 해주시겠지만 별스런 완벽주의 때문인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말은 못 하는 용기 없음 때문인지  말 한마디를 못하고 결국 출근하기위해 집을 나선다. 아픈 아이에게는 집에서 쉬라고 보온병의 물이랑 누룽지도 챙겨 먹고 푹 자라고 단단히 얘기해둔다.


막내야. 엄마가 없으면 스스로 자신을 잘 돌봐줘야 해. 어떻게 돌봐야 할까.



아이는 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약도 챙겨 먹어야 한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가엽다. 속상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일단 나간다. 가는 길 내내 아픈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밣힌다.


부랴부랴 학교에 도착. 결국 교감선생님께 사정을 얘기하고 외출 허가도 구두로 받아둔다. 교감선생님은 걱정 말고 얼른 아이데리고 병원다녀 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수업을 바꾸는 담당선생님께 오늘 내 수업을 모두 오후로 미뤄달라고 부탁드린다. 이래저래 다른 선생님들 수업을 옮기고 이동하시더니 퍼즐 맞추듯 내 수업을 오후 5,6,7교시로 가지런히 모아주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행정서비스에 접속하여 가족 돌봄 외출을 허가받는 양식을 작성하고 결재를 요청한다. 그리고 급한 일 몇 개를 휘리릭 끝내고 다시 학교를 나선다.



막내야. 엄마 지금 가고 있어.
30분쯤 후에 빵집 앞에 나와있어.
 병원 가자.



버스에서 내리니 저 멀리서 오늘따라 더 말라 보이는 아이가 내복에 패딩만 걸쳐 입고 힘들게 걸어온다. 푹 감싸 안아주고 얼른 집 앞 병원으로 향한다. 배도 아프고 기침에 컨디션도 안 좋아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감기라며 심한 건 아니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안심하고 처방전을 받아 나온다.


팔목 하나를 휘감아 목에 감으면 푹 안기는 작은 아이, 안아준다.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 '샌드위치'라고 작게 말한다. 냉큼 빵집에 들어가 하나 사주고 집에 들어와 차갑게 식은 누룽지를 한번 더 데워 내놓는다. 막내는 몇 숟갈 뜨더니 그냥 내려놓는다. 약을 타서 먹이고 둘이 침대에 눕는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니 아이는 금세 잠든다. 나도 왔다 갔다 번잡했던 아침시간을 보내서 일까 스르르 눈이 감긴다. 쌕쌕거리는 아이의 숨소리가 자장가가 되었을까. 간신히 엄마노릇을 하게 된 안도감에서 였을까. 고작 20분이었지만 꿀맛 같은 단잠을 잤다. 다시 일어나 아이가 깨지 않도록 몸을 굴려 침대서 나와 두 번째 출근준비를 한다. 가만히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본다. 또다시 마음이 무겁지만, 약해지는 마음을 떨치고 단호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막내야. 엄마 또 출근해. 푹 자고 있어.
 따뜻한 물이랑 누룽지 보온병에 해놨어. 일어나면 약이랑 챙겨 먹어.
사랑해.



문자 한 줄 남기고 버스에 다시 몸을 싣는다. 두 번 출근하는 오늘, 하루를 두 번 사는 느낌이다. 그래도 홍길동처럼 엄마와 교사로 변신하며 뛰어다닐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아플 때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 아픈 아이를 혼자 두고 마음 졸이며 근무하고 있을 다른 누군가 혹은 아픈 아이를 돌 볼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보냈을 동지엄마들의 불편한 마음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른다. 이름모를 엄마들의 절절함이 된 또 다른 아이들을 돌보러 다시 출근한다. 교사의 품은 천 개여도 늘 부족하기만 하다. 메리포핀스 어디 나요?

#라라크루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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