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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천개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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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pr 23. 2024

밝음으로 통하게 하라.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살아남기

아픈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다른 이의 아픔을 먼저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는 일이 나는 익숙하다. 오히려, 내가 아플  도와달라고 소리내 말하는 것이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엄청난 충격을 맞닥뜨리고 나니, 나도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때문에. 지난주, 악성 민원인을 겪은 후로, 그 괴로움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지만 그것을 또 멈출 수도 없어서 차라리 그 아픔을 직면해 보자 생각했다. 그리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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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써도 되나 잠시 고민했었. 그런데 막상 쓰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울한 나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설명하느라 또다시 몇 번씩 그 일을 상기할 필요도 없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여러 번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오히려 좋았.  



힘들다고 말할 용기

고통스럽아프다고,  힘든 기억이 자꾸 생각나서 괴롭다고, 같이 욕해달라고 여기저기 말하는 건 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다. 나의 아픔과 불편함을 말하는 것은 내게 참 힘든 일이었는데. 그러나 막상 용기 내어하고 보, 좋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선물이 쓱쓱~ 하나, 둘씩 배달된다.


야, 그 × 누구야. 내가 전화해서
똑같이 말해줄게.


친한 친구다. 글을 보자마자 전화해서 받자마자  육두문자를 날리며 내 편이 어준다. 한 바탕 같이 욕을 하고 어이없어 한참 웃는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다. 같이 글을 쓰는 다정한 라라크루님들도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직접 한 이야기와 공감,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카톡으로 전해진 깨알같이 정성스러운 위로의 말들은 나의 심금을 울린다.  어떤 샘은 수시로 전화해서 내 안부를 묻는다. 어제는 목소리가 안 좋더니 오늘은 괜찮다고 다행이라고. 어떤 지인은 전화해서 몇십 분이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친한 샘은 긴 병원투어 끝에 배고픈 나를 태워 맛난 저녁을 사준다. 내가 우는 걸 알아차린 아들은 옆에 누워 재미없는 농담을 계속한다. 내가 웃을 때까지. 다정한 어떤 작가님은 향긋한 향초 선물로 나를 위로한다. 이렇게 나는 강남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위로받고 있었다.



함께여서 좋고 그래서 더 슬픈

지난 월요일, 출근하기 힘든 아침이다. 순간, 내가 빠지면 힘들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결국, 어기적 어기적 힘든 발걸음으로 기어코 학교엘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니, 뒷자리 샘은 슬그머니 찾아 어깨를 감싸주신다. 위층 부장님은 조용히 내려오셔서 축 쳐진 나의 등을 토닥여주시고. 앞자리에 앉은 가냘픈 여인은 자신보다 두 배나 큰 나를 찾아와 아무 말 없이 와락 껴앉는다. 갑자기 울음이 터진다. 까마귀 한 쌍이라도 되었을까. 꺼이꺼이 한 참을 같이 다. 이심전심이 되어 두 명, 세명 모이더니 더 큰 까마귀 떼가 되어 어느새 큰 교무실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런데도 창피하지 않다. 고맙고 좋다. 교감선생님이 그만 울라고 나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전 교사가 모여 한 동안 울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교감선생님도 같이 우신 건 안 비밀) 그러곤 내 안색이  안 좋다며 교감선생님은 얼른 조퇴하고 병원 가라고 내보내신다. 그리곤 아마 동료샘들은 너도 나도 자진해서 내 수업을 대신해 주었을 것이다. 그 힘듦을 알기에 고마움에 또 눈물이 난다.


 우리는 어둠을 걷어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기 안의 밝음을 드러내고 키울 필요가 있다. <채근담>에 '명이점통(明而漸通)'이라는 말이 있다. '밝음으로써 점점 통하게 하라'는 뜻으로 어둠을 내쫓기보다는 밝음을 키우라는 의미이다.

<나는 왜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할까>       210~211쪽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그 아픔을 도 알고 우리도 알고 있다는 연대감,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알아차려주는 공감. 괜찮다고 위로하는 다독임.  모든 것이 함께여서 더 슬프고 그리고 더 든든했던 순간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분노로 생긴 상처는
또 다른 누군가의 따스함으로
서서히 아물어 가고 있었다.

.



정당한 요구를 말할 용기

 한 동안 흐르던 눈물을 닦고 정신을 차린다. 교권보호위원회에 나의 사안을 신고, 접수한다고 말해두었다. 담당부장님이 챙겨주신 서류에 그날의 일을 상세히 기록한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정리한 것들을 용기 내어 차분하게 교장,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한다.


첫째, 민원인의 일방적이고 무례한 폭언과 고성, 모욕적인 발언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대한 보상과 직접적인 사과를 원합니다.

둘째. 우리 학교에서 민원인의 의견을 받는 시스템을 재정비해주세요. 민원인의 신분도 모른 채 교사는 무방비상태로 불특정다수의 민원인을 상대하고 있고,
그 피해도 오롯이 감당해야 합니다. 이 시스템은 분명히 문제가 있고 민원인의 무리한 요구와 무례한 행동을 자제시킬 방법을 꼭 찾아내주세요.

셋째, 지필평가 두 번을 원치 않습니다.
두 번의 지필평가가 학생 성장을 지원할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수행평가와 함께 1학기에 2번 보는 지필시험은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하므로 반대합니다.




참는 것 말고 참된 일을 하는 것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괜찮지 않고 그 민원인이 잘못했음을 기록하고 신고하고 알려야겠다고 용기를 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참기만 하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기에. 어떤 보상도 사과도 받지 못해도 나는 괜찮다. 기록으로라도 남겨 혹시 다음 사건이 생기더라도 그 사건이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가 되도록 하고 그렇게 수치로라도 그 충격과 심각성에 상징적인 의미를 보태고 싶었다. 이 작은 행동으로 그 민원인의 무분별한 행동에 브레이크가 걸려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고, 무례한 방법, 그 한 가지로만 자신을 표현하는 민원인의 행동을 멈출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교감선생님이 내가 받은 전화번호로 그 민원인에게 다시 통화를 시도하셨다. 첫 번째 통화엔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아 그런 일은 모른다고 했고 두 번째 통화엔 민원인의 폭언으로 담당교사인 내가 충격으로 병원치료 중이라 하자, 자기도 병원에 가서 누워야겠다고 했으며 세 번째 통화시도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음성메시지만 있었다. 결국 사과는 받지 못했다.


난생처음 찾아간 정신과

내가 받은 충격에 대한 기록과 치료를 위해 난생처음 정신과를 찾았다. 악성 민원인과의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그 민원인은 아마 성격장애일 거라고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계속 긴장 상태에 있는 내 머릿속이 마치 팽팽해진 고무줄 같다고 말하자, 작은 알약 세 개를 주신다. 긴장도를 낮춰주는 약인데 한번 먹어보라고 하신다. 약기운 때문일까. 몽롱해진 정신으로 나는 모든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강제종료된 내 사고시스템, 왠지 조금 슬프다.




그래도 쓰길 잘했다.

소문내길 잘했다. 예전 같으면 나약한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누군가 알아봐 주길 기다리거나 혼자 울다 말다 훌쩍이고 속상해하다 결국은 나도 '성난 사람'이 되어 엄한 곳에 나도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따스한 사람들의 위로의 말에 나의 눈물이 그치기 시작했고. 두통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오늘 영어시험이 무사히 끝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힘은 아픔을 나누어서 더 큰 위로가 되어 검은 슬픔을 서서히 몰아내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어둠을 몰아내는 건 결국 빛이었다. 인과응보의 결말을 내 눈앞으로 목격하진 못했어도 아픈 기억을 씩씩하게 대면할 용기는 얻었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요한복음 10장 11절~18절)




 나를 모르는 자의 평가에 내가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오직, 나를 아는 사람들만이 나를 알아볼 것이며,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아이들, 나와 함께 한 사람들 또한, 내가 알아볼 것이다. 무례한 자가 자기 멋대로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쫓아내고 싶은 비명에 불과할 뿐이다.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나의 길을 가자. 미친개가 물어생긴 상처는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무릎에 묻은 흙은 훌훌 털어내고 잠시 쉬었다가 또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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