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빼놓고 사랑을 말하려니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었다.

by 블루나잇

하늘이 울던 날, 너를 마주칠 때마다 나는 가방 속 우산을 저 멀리 다른 세계로 감추었다. 투명한 빗물 같은 눈짓으로 너를 두드리고 싶어졌다.


어깨가 젖는 쪽은 네 쪽이었지만, 마음이 젖는 쪽은 내 쪽이었다. 모든 시간이 멈추는 그곳에선, 살큼한 채송화 향기가 얕게 흩날렸다. 너는 나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다. 네 목소리를 가득 머금은 메아리가 잡을 새도 없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리의 작은 틈을 은은한 앵두빛 햇살이 채우고 있었다. 손끝에 닿은 행복을 잃게 될까 두려웠던 나는, 너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문득 너의 이름을 입술 위에 올리고 싶어지면, 마음부터 저려왔다. 어디선가 네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마음을 움켜쥐는데도, 새어 나오는 분홍빛 환희를 어쩌지 못해 전부 떨구기 일쑤였다. 널 생각하면 모든 일들이 우주의 축복처럼 나를 끌어안았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만물의 찬탄이 얼룩져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 위로 나는 자꾸만,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귀 끝엔 발갛게 봉숭아 꽃물이 감돌았다.


내가 녹아 없어지는 순간까지도, 나를 없애는 사람이 너라서 참 다행이었다.

언젠가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진득한 말투와 다정한 온도로 인사를 건네는 네 눈을 또렷하게 마주하겠다. 그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나를 온통 가두고 풀어놓지 않을지라도. 연신 헤엄치며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흔쾌히 너라는 바다에 빠지고 싶다. 깊고 광활한 잿빛 파도 아래로 두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너였으면 좋겠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너를 빼놓고 사랑을 말하려니,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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