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살아있는 작은 아가미로 호흡하는 법을 너는 안다고 했지. 남들보다 조금 덜 슬플 수 있다고. 나에게 너의 회갈색 상처를 보여줬던 날 말이야. 삶은 감자가 뜨겁게 식어가고, 마룻바닥이 눈물로 일그러지는 어떤 날에. 우리는 풀벌레가 잘잘대며 우는 앞마당에 곱게 누운 채였다. 숲이 하늘 위를 타고 올라 구름 겉을 잔뜩 드리우며 조금만 더, 한 발만 더, 그들이 우거지는 낯선 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스치우던 무렵. 그 순간.
희미했다. 숨을 쉬고 내쉬는 게 꼭 지난 생을 돌아보는 것과 같아서. 전생이 있다면 우리는 다정했을까? 다시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면, 진실을 알고도 너와 나는 웃음을 주억거리며 사시사철 꽃내음을 맡는 정다운 음표로 남겨질 수 있었겠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들. 너도나도 자아를 지닌 말이 팽배하는 세상이라서, 무심코 뱉어진 언어를 주워 담을 수 없는 청명의 세계에서는 무릇 쉬어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말을 쉰다는 것은. 소통의 부재, 홀로 꽁꽁 숨겨둔 마음의 대화가 늘어나고 쌓여서 거리가 천 리까지 당도하는 사이로. 또다시 수풀이 우거지고.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았을까.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과 내색하지 않는 사람의 경계에, 우리는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떤 거짓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고, 어떤 진실은 누군가를 해하는 것이다. 거짓과 진실은 공정한가. 투명한가. 그리하여 어느 쪽의 손을 의심 없이 들 수 있는가. 말이 숨을 쉬는 광경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당신과 나를 슬프게 만들었고. 아가미로 호흡. 호흡. 호흡. 들이쉬고 내쉰다. 눈 깜빡할 사이 물고기가 되어버린 사람들. 가만히 바라보아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고 했다. 빨랫줄에 널린 속옷들이 애처로운 몸체를 허술한 바람에 나부끼는 순간에도, 창피함을 무릅쓰고 가까운 이에게 생계 도움의 손을 내미는 순간에도. 우리는 호흡. 호흡. 호흡.
어떤 순간에도 숨을 멈추어서는 안 돼.
슬프지 않아야지. 그래야지.
삶의 의미를 찾는 게 가장 멍청하다는 말이, 그때의 당신을 울렸다고 했지. 그냥 태어나 사는 존재들. 태어났기에, 어쩌면 죽지 못해 이승을 떠돌아야 하는 존재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웃기 위해 자꾸만 계단을 오르거나 산을 타거나 바다를 유영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죽기 위한 노력으로 동굴로 해안가로. 사는 게 참 쉽다. 죽는 게 어려우니 당연히 사는 게 쉬울까. 살아, 계속 숨을 쉬어 지금처럼. 이유 없이 호흡해. 마음속 작은 아가미를 알고 있니? 슬퍼도 슬프지 않게 해 주는. 나는 아플 때 말야, 내 안에 기생하는 조악하고 기구한 아가미를 떠올리지. 나보다 더 약한 존재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아.
잔바람이 살랑이는 곁으로, 얕은 물결이 머리칼을 슬며시 적실락 말락. 두 눈이 스르륵 감겨오면 당신과 나는. 마주 보고 웃던 서로의 보조개를 지키고 싶어 깊은 공기를 주워 마신다. 전부 쓸어서 모래조각까지 흡입할 만큼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 많던 시야의 공기를 가슴으로 밀어 넣는다. 너는 숨 안에 갇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고. 나는 지구의 밖에서 무엇을 알아들으려 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입을 뻐끔거리던 너의 가냘픈 모양새를 아둔한 나의 눈동자로 헤매던 끝에, 비로소 우리가 사랑이었음을. 서글픈 단어로 너와 내가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빈칸을 채우다가 돌아보는 일. 주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그러다가 아무 곳에나 주저앉는 일. 간밤엔 사냥당하는 꿈을 꾸었다. 내 목숨이 누군가에게 긴요한 사냥감이 될 수 있다면, 번쩍 눈을 뜨고 호흡. 호흡. 호흡. 하릴없이 내어줘도 될까 봐. 그래도 되는 인간일까 봐. 겁을 먹은 짐승들. 그 안에 섞인 나. 피폐해진 정신과 지친 몸. 바닥에 서서, 바닥에 누워서,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던 날들이 영영일까 봐 무서웠었지. 두려웠고, 모두 끝이 난 것 같았어. 심해로 달리는 말은 몇 번을 휘청거리더니 파도에 자꾸 휩쓸리기만 했다. 바다와 같은 색깔이라 해도 다른 속성을 지녔을 텐데. 자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구잡이로 섞이고 뛰고 안고, 언젠가 해낼 수 있다고 믿고.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방법을 알고 싶어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숨을 쉰다. 호흡한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마음이 먹먹할 때에도. 멈추지 않아야만. 그것만이. 죽지 않고 호흡하는 방법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