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물고기
바다는 결국 우리의 심연을 채우지 못했다.
창밖으로 연노랑빛 태양이 파고들었다. 가만히 두었을 뿐인데, 반갑게 맞이하던 손등 위에 하나의 경계선이 그어졌다. 나뉘어버린 두 갈래의 틈 사이로 선과 악이 들어차고 있었다. 마주 보던 그들은 정가운데를 잘린 탓인지, 분단의 아픔을 겪은 자석처럼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등을 마주대고 있었으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자신들 중 하나가 쓰러졌노라 생각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섞이지 못하고 반대의 양면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단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너는 자꾸만 변해갔다. 하루 수십 번씩 뜨거운 불길같이 치솟다가도, 고개를 떨구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런 너를 바라보기가 마음 아파 내 옅은 도화지에는 짙은 눈물길 마를 새가 없었다. 슬픔을 무시하려니 이따금씩 목젖이 딱딱해졌다. 근거 없는 속삭임에 현혹되지 않고 싶었다. 내 입 안에서 잠든 너를 삼킬 수도 내버려 둘 수도 없어 괜히 시큰거리는 눈밑을 매만지곤 했다.
영혼들은 육신만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사라진 숨들이 부지기수였다. 순리를 거스르면 탈이 났기에,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서둘러 떠나갈 채비를 하는 듯했다.
괜찮지 않은 마음은 순결해서 거짓을 고하지 못한다. 대신 아플 수는 없는 걸까. 가끔은 어떤 물음으로도 사랑이 열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한 번의 시선을 위로 두지 않으면, 내장 속만 켜켜이 훑어내다가 쓸쓸한 송장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삶이란 어두운 심해를 뒤적대는 일. 물속에서 아득하게 발을 휘젓던 나는, 비누 심장을 가진 사람처럼 애꿎은 립스틱 뚜껑만 지분거렸다. 내 손에 끈적이는 누군가의 체취가 네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윽고 우두커니 앉아있던 바람이 다른 결로 흐르기 시작했다. 떠내려가며 바라본 구석마다 아스라이 쓰러져있는 추억들이 너무 많았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어쩌지? 아침의 시간에 밝은 옷을 두른 어둠이 찾아와 나를 집어삼킬까 봐 숨이 막혀왔다.
나는 너에게, 전부 열리고 싶은 자물쇠였다. 평생을 애수로 가득 채워 온 너를 생각하노라면, 지나온 적 없던 먹먹의 바다가 발 끝을 스치운다. 관계의 망망대해에서 네 손에 쥐어줄 열쇠를 찾을수록 너는 계속해서 멀어져 갔다. 우리는 어느덧 뭉툭한 나무토막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남은 숨결을 모두 빼앗긴 뒤에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세상이 잠잠해졌다. 닫힌 결말의 비극을 애도하듯이. 그렇게.
네가 주워온 조개껍데기에서는 더 이상 물고기의 헤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