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상

헤어짐을 모르는 사람들의

by 블루나잇

뽀얀 연기 한 움큼 손에 입혀질 때에

어디선가 밀려온 보드라운 쌀알 내음이

코끝에 아른아른 감돌며

꿈에 그리고픈 장면을 다시금 불러온다


사내의 철 지난 낡은 구두가

무심히 터벅대는 생의 애환이

머리맡에 잔뜩 묻은

퀴퀴한 흙먼지를 털어내고

오늘도 살아내었다 인사하는 모습을


그의 손에는 어김없이

여인을 위한 붉은 산수유 꽃물이 들려있었고

노쇠한 연회색 대문 안부터 쌓인

찰랑대는 투명의 기다림이

사내에게 와락 달려들었다기에

아픔 한번 겪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우리들은 웃고 말았다


공연한 설움 한바탕 털어낸 후엔

갈색 범벅 작은 천사 반가움에 뒤엉키는 소리

유리 식탁 위로 살갑게 번진 은수저 눕는 소리


광활한 양푼 아래로 한데 섞여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며

혼곤히 흐릿해지는


그리움 짙게 드리운 어여쁜 손길이

분주히 거슬러오는 아스라한 주황빛 풍경화 앞에서

달그락달그락 기한 없는 사랑을 피워냈음을


그것은 한낱 먼지로 잉태되지 않고

몸을 편안히 적실 뜨거운 위로가 되어

입술과 입술 기슭의 엷은 틈 사이로

응축된 제 몸을 유연하게 통과시켰다


칠흑 같은 밤

누군가는 차게 희어진 바닥에

검은 잉크로 기억을 덧대어 보았다

그들의 시간이 평생의 궤적 속에 묻혀

따스한 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동그스름한 원의 그것을 둘러쓰고

걸어도 걸어도 끝지 않는

영원을 유영한다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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