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착즙 되듯 졸음이 눈보라처럼 쏟아졌다. 몸의 앞면이 축축한 바닥으로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불쾌함으로 똘똘 뭉친. 몽롱하고도 이질적인 한낮의 거리, 한낮의 꿈. 현실과 미래를 넘나드는 경계는 작은 부류의 꽃이 구분 짓곤 하였다. 한껏 화려한 기상을 피워낸 뒤 매캐한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것은. 듬성듬성 시린 눈을 검게 만들고 정신을 희미하게 가둔다. 내가 나를 신뢰하지 않도록 갈라놓는다. 희끄무레한 안개는 당신의 눈에만 보이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골몰의 숲에서 빠져나온 괴이한 결정체일까. 마을에는 한동안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매일 밤 초록색 눈빛을 띤 짐승 하나가 어린아이를 훔쳐간다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 되돌릴 수 없는 행위를 통해 구멍 난 마음을 메꾸기 위함으로, 생경한 덩어리들은 부모를 닮은 주름의 생채기를 뿌려대었나. 사랑은 고독하고 고독하므로 우리는 이토록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고. 사랑하기에 기대고 기대하며, 기대 없는 사랑은 사랑이라 발음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 다리 한쪽 내놓기 버거워 보이는 시옷 하나에도 죄스러움을 감내하는 것. 그리하여 종국에는 전 명망을 잃게 되었음을. 이별 없이 불가능한 관계의 사유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지막 발악이다. 성성한 백발의 노인이 알 수 없는 주술을 읊조리는 사이로 대지는 거푸 황폐해졌다. 곡식은 죄다 허리를 세우며 비교와 저울질로 목을 졸라댔고, 새들은 살길을 찾아 둥지를 이사하느라 분주했다. 정확히는 집을 끌어안은 나뭇가지들을. 말라비틀어진 것들을 옮기느라 덩달아 말라비틀어져가고 있었다. 그만 아파달라는 핏기 어린 조언들은 당장의 생사를 책임져야 할 가족에게 진심으로 닿았을까? 어설프게 떠들어대는 자모음이 오히려 기만의 비웃음을 입고 전신을 음침스레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정녕 몰랐을 리 없다. 닳고 닳아 망가질 수도 없는 육신을 말이다. 침묵이 최선의 위로일 때가 있다며 곰곰 타이르는 입매를 기억한다. 이따금 생을 끊고 싶을 때마다 따사로운 보조개를 떠올렸다. 그를 환히 비추던 까마득한 봄의 햇살을. 자격지심으로 열등감으로. 그저 지켜내어야 했을 뿐인데. 나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로요. 아주 지독한 사정이 있었답니다. 누구도 이해 못 할, 이해를 건네지도 당하지도 않을 쓸모없는 대담은 새벽녘까지 이어졌고. 간밤엔 사람들이 더 이상 눈인사도 주고받지 않는 버석한 동상으로 변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서로 마주하지 않는 것만이 인류 최초의 희망이랬다. 인간의 체온보다 바깥의 기온이 더 뜨거워진 어느 겨울날 강가에 서서. 지나간 흑색 필름을 복기한다. 사막의 곡식들은 마침내 열매를 피워냈을까. 새들은 부서지지 않고 부서짐을 옮겨냈을까. 외로움은 삶의 얼음요새 같은 것. 계속해서 밀어내고 밀쳐지고, 끝내 다다르지 못함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 아니었는지. 작자 미상의 실체들 또한 의심으로 의심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말 것이다. 익숙함의 적응이야말로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형벌이었다. 대개 아닌 걸 알면서도 저지르는 법이지 않나. 청청히 멀어진 미래 촌가의 비루한 목선으로부터 시작됐을 이 슬픈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