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함이 낮게 깔린 갈색 더미들 위로 조악한 자갈이 켜켜이 쌓인다. 엊그제 보았던 너는 내 것이었다가, 내 것이 아니었다가. 내가 모르는 필멸의 얼굴을 닦아내며 숲을 통과하는 바람처럼 유유히 떠나갔다. 오늘은 느지막한 여름비가 당도할 것 같다. 문득 물기가 차오르는 몸을 맡으며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질 때에 옥탑 마루의 빨래를 걷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밤낮 늦었고, 미련했고, 따가웠다. 죄가 있다면 혈혈단신 그리움의 패역임이 분명했다. 고요한 천장에 둑둑 부딪히듯 한밤의 물소리가 살갑게 귓전을 울린다. 가느다랗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빈약한 마룻바닥을 누빌 무렵. 거칠게 다가오는 묵은 그림자가 지긋하도록 수사망을 좁혀오기에. 그만두고 싶었음에도 아니, 실은 그게 아니었음에도. 침대 밑에 기거하는 누추한 괴물은 날이 갈수록 웅장한 정신력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극렬한 다툼 속에서 붉은 마음이 피어날 리 만무하다는 진실을 잊었을리 없었다. 순간의 언성이 사랑으로부터 피어난 꽃임을 자각하는 값비싼 각성은 그들에게 사치였을 테니까. 미움으로 그득한 몰각에는 등을 돌렸다. 평생 보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신호들이 쌓여 아픔을 발췌하는 조각 너머로. 얼마나 흘렀더라. 네 기억 속의 나는.
바닷결을 따라 제 몸을 쌓고 부수어
어느 갓밝이 투박한 위협에 이름을 약탈당했을
그리하여 똑같은 모양새에 똑같은 옷을 갖춰 입었을
그날, 그 새벽의 포말들은 알고 있었을까
미열이 남아있었다
도주의 등쌀에 밀려 그곳에 두고 온 잔재 조각들이
언제 밟혔냐는 듯이 힘겹게 고개를 치켜세우기에
여전히 사랑은 마주 보고 있더구나
떠나는 날에도 으레
서너 타래의 태만과 허물을 사이에 두고서
라디오에서는 떠들썩한 장마 성문을 전해왔으나
닳은 기와덮개를 전일 적시던 장대비는
성근 눈울음을 슬슬 그쳐가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점의 모양을 두르고 방관하는
햇살을 다그치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