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것들에게

잊지 않는 것의 죄.

by 블루나잇

당신은 낯선 동네의 구시가지를 닮았다


이제는 그리운 이들만 눈 가리고 찾아 헤매는

희고 어여뻤던

땀방울마저 짜게 찬란했던


부서져 깎인 회색 벽돌 앞에서

낡고 지친 삶의 내장 속으로

어둠의 구름 떼가 들이닥치는 동안


낙숫물이 깊게 파인 상처들을 끌어와서

바짝 마른 심장 위로 죽죽

볼품없는 갈기들을 내뿜는다


당신이 돌아오기로 한 날이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움과 미련의 쳇바퀴는

서로를 열띤 함성으로 괴롭히다

굳은 잿빛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내가 그린 그림은 이미 너무 오래전 일이다


나는 이제 당신을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으면 올 것이기에

기대하지 않으면 나를


마지막으로 하루 더 찾아 줄까 봐


어느 환한 저녁놀 발갛게 물든 시각

아무렇지 않은 가면 속

익숙한 눈매와 마주칠 때면

잔여 감정 없는 촘촘한 얼굴로


어쩌면 이곳에서의 재회가 마지막일 당신에게

속절없이 녹아내리며 한탄하지 않기를 바랐다


당신이 아주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뜨겁게-묵묵히


짙푸른 뒷산에서 삼일 만에 자라난 분내 나는 풀잎이

주름진 눈가를 설설히 적실 때에

하나의 빛깔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것은 도시의 호화스러운 눈살이 기어이 토해낸

자조의 선홍빛이었다



keyword
이전 12화멸망의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