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낙네의 슬픔_1

손에 닿아야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by 블루나잇

문을 열기 전, 나는 간혹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밖에서 어떤 이가 날카로운 흉기를 들고 서 있다가 내가 있는 안쪽을 향해 난데없이 공격해 올 것 같은, 슬쩍 열린 문틈이 완전히 벌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분노 쌓인 얼굴을 무차별적으로 들이밀 것 같은 공포감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억울한 원한을 안길 만큼 시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자부하기에 인과 관계가 불분명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원인 모를 불안함이 얕은 수면 상태를 걸어가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펼쳐지는 꿈 때문인 줄 알았다.


종종 제대로 닫히지 않은 현관문을 타고 누군가 꽤나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들이닥치는 꿈을 꾸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럴 때면 마치 슬로우 모드에 걸린 듯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두 다리의 의도가 멈추어지고, 허공에서 헛발질하듯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잔뜩 흔들리는 동공을 하고 홀로그램 같이 의미 없는 몸체가 갈 곳을 잃었을 때,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그놈은 소름 돋게 비웃으며 자신이 가꾸어 둔 악의 구렁텅이로 나를 힘껏 밀어 넣었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고 나면, 현실에서도 그놈이 나를 찾아올까 겁이 났다. 생김새조차 선명하지 않았지만 왠지 곁에 가까이 있다면 느낌으로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이상하고도 괴이한 기시감을 겪고 있는 중에, 나는 악몽이 시작된 원인을 다른 핑계로 둘러대도 크게 억지스럽지 않을 시간과 마주하게 됐다. 어쩌면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때, 전생체험이 꽤 유행가도를 타던 적이 있다. 너도 나도 최면술의 영특함에 독특한 눈을 뜨고 있을 때였다. 전문가를 통하는 방법은 비교적 접하기 어려웠기에, 혼자서도 전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체험 영상이 커뮤니티 사이를 떠들썩하게 돌아다녔다. 비슷한 호기심에 잠식되어 있던 나 또한 눈길을 거둘 수 없었다. 화질이 좋지 않아 노쇠한 필름테이프처럼 늘어진 영상을 속는 셈 치고 슬쩍 재생시켜 보았다. 작은 네모 안의 남자는 영상의 조회수를 높여 줄 누군가의 이목을 끌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풀어놓더니, 웬만하면 혼자서 시도하지 말라는 강한 일침을 늘어놓고 한껏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웅장한 목소리는 내뱉어질수록 그 기세가 등등하여 영상의 비장함을 자꾸만 증폭시켰다.


워낙 어릴 때였으므로, 주의사항은 오히려 더 큰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혼자서 해야 온전히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집 안에 내가 홀로 남게 되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부모님이 모두 일터로 나가신 뒤였다. 나름의 치밀한 계획을 실행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음성이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핸드폰을 침대 헤드 쪽에 슬며시 올려놓았다. 집중이 필수라 하니, 잔잔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방을 빛내는 형광등의 스위치부터 내리며 제 일을 쉬게 했다. 집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부터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아 심호흡을 여러 번 나눠 시도하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다. 조용한 침대 위에 정자세로 누워 눈을 감는 것. 실험 삼아 틀어두었던 영상을 다시 처음부터 재생시키면, 마침내 나의 전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특수 경우에 따라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만, 그간의 후기담으로 짐작해 보건대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는 도전이었다.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벌써 거의 다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둘러 침대 위에 몸을 곧게 뉘인 나는, 핸드폰을 뚫고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온몸을 그리고 모든 정신을 기울였다. 파르르 떨려오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끌어내렸다. 사정없이 두들겨대는 심장 박동이 너무 격렬하여서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걱정이 머릿속을 둥둥 울려대었다. 손바닥에 아릿한 긴장이 고이며 금세 땀으로 축축해졌다. 같은 시각 핸드폰에 감금되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그가, 마침 서론을 끝냈는지 다음 단계의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더도 말고 십 분 정도만 경청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잠들 것 같은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동시에, 유니콘이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한다는 천상 세계에서나 나올법한 배경음이 귓가에 은은하게 겹쳐 들어왔다. 당신의 몸은 편안하게 이완됩니다. 몸에 있는 모든 힘이 계속해서 풀립니다. 지금의 나는 아주 홀가분한 상태입니다.


나라는 자체를 내 안에서 빼낼 수 있도록 그는 계속해서 세뇌의 언어를 건넸다. 그의 말을 따라 팔부터 시작해 정강이, 복숭아뼈를 넘어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힘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느새 그를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몸을 악마 혹은 천사 따위에게 빼앗긴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었다. 일순간 내가 어딘가로 붕 떠오르며 일체들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몇 번의 시도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이 설계한 환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적당히 훈련에 익숙해지자 내가 눈앞에 처음 보는 문을 떠올리도록 만들었고, 그 문을 열고 스스로 넘어가게끔 유도했다. 전부 해낼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의 어깨너머로 어렴풋이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았다. 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과연 내가 경험하는 이것들이 상상인지 실제의 전생이라는 것인지. 그런데 실제의 전생이라는 말은 맞는 문맥인 걸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제라고,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어지러운 사유들이 뒤섞여 이전보다 가벼워진 몸 전체를 꽁꽁 묶어대고 있었다.

확실한 정답이 적힌 답안지는 아니었지만 그의 말대로 내 앞에는 내가 꺼내어 본 다른 형태의 나라고 불리는 내가 보였다. 희미하고도 명확하게 존재하는, 또 다른 내가 멀쩡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나라는 것을. 깨어있는 몸을 통해 꿈을 꾸듯이, 신비롭고 자연스럽게. 남자가 쌓은 정성스러운 구도에 의해 형성된 그 세상의 나는, 낡아빠진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는 여성이었다. 한복과 비슷하게 생긴 정갈하고 소박한 의상을 걸친 채로, 예스러운 거리를 걷는 젊은 아낙네의 모습을 하고. 사극 드라마의 보편적인 일상 장면에서 나올 듯 고즈넉한 모양새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창 색다른 광경을 휘젓고 다니며 꿈인가 생시인가 천 개의 정신을 헤매는 사이. 나에게만 들리는 남자의 널찍한 목소리가 울리며 내가 서있는 시대를 천둥처럼 뒤흔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어떠한 계시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당신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갑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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