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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May 09. 2023

[몽당 소설] 봄 잔혹사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다.

일주일을 웃도는 시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너에게, 짧은 단상 하나 남긴다. 때로 식은 밥알처럼 밀려와 목구멍에 켜켜이 쌓이는 슬픔들이 너를 집요하게 좇으며 괴롭힌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저 아픈 착각이라 여기고 태연한 척 머리칼을 쓸어 넘겼지만. 실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약하고 싱그러운 새소리가 오묘한 규칙으로 귓바퀴를 핥아대고, 한 철만 온다는 봄내음이 향긋하게 만개한 산과 들에 놀러 가는 사람들을 보며. 너는 그렇게 말했으니까. 사람 같다고. 저 사람들 진짜 사람 같다고. 사람답다. 저게 사람이잖아. 우리는 뭘까? 심장을 찌르는 애처로운 물음표로 내 목을 조르는 일도 절대 잊지 않았다.     


네 의문이 나를 파고들 때.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싶었다. 하기 싫었던 게 아니야. 하지 못했던 것뿐이지. 마음에도 없는 설탕물을 들이부으려니 탈이 안 났겠는가. 그러나 인정은 스스로 해하는 것보다 어려웠고. 우리는 십수 년이 지난 그날까지도 깊숙이 파여 썩은 물이 고여 있는 그 웅덩이에 갇혀있었다. 마음의 풍요가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전부 데려다 놓고 삼일만 굶겨 보자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악의적 심보가 우릴 더럽힌 걸까. 그게 아니라면 시궁창 비린내가 난무하는 어느 길바닥 위에 주저앉아 생활하는 것이 태어난 자체의 이유인, 태초의 신이 얼렁뚱땅 떠넘겼다는 잔인한 운명을 업고 너와 나는 이 땅에 왔던가. 이게 우리 세계의 끝이라면. 뭘 어떻게 했어야 했나. 그저 잘 살고 싶었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우린 너무 빠른 나이에 알게 되었는데.      


때 이른 욕심은 화를 불렀다. 가난은 설움들 엮 견딜 수 없고 버틸 수 없는 가난이 되었고. 견딜 수도 버틸 수도 없게 막막해진 가난은 더 커다란 욕망의 주체할 수 없는 가난이 되었고. 너는 아팠으나 내 앞에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네가 내색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네 특유의 올망해지는 눈동자를 보면 잡아낼 수 있었는데. 우리는 때때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볼품없는 사랑이 우리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일러주었다. 어떻게든 지켜내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세상에 대한 아집으로 독해진 손가락 마디마디를 제대로 톺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자꾸만 희미해지고 아득해지는 게 두려웠다.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처럼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만질 수 없는 너를 두고, 너를 잃은 채 세상에서 제일 가난해진 나를 두고. 공허한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리며, 애매한 입술에 핏물이 흐를 때까지 씹어재끼며. 나를 두고 먼저 간 네가 참 비겁하다고 곱씹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하여, 너를 씹고 또 씹었다. 비싼 고기라도 한번 먹자고 가녀린 등을 떠밀면 질겁하며 손사래 치던 네가 떠올라 목이 메었다. 남들 다 쉰다는 휴일에 새카만 일터로 밀려나 그곳보다 더 까매지는 너를 떠올리면 가슴이 타들어갔고. 오직 한 시간의 생이 여생인 사람처럼 초조해졌다. 네가 받는 형벌 같은 그 모든 품들이 내 죄인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네가 우리를 전부 잊었길 바라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억을 잊는 행위는 무척 두렵지만 어쩌면 좋았던 날보다 아프고 쓰리고 벼락같은 날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어서. 네 옆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고 속이 상했으니까. 계속 너를 부르고 찾는 짓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신이 둘 중 하나의 기억을, 아니 둘 다의 기억을 가져가고 네가 행복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영혼을 바꿔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햇살이 노란 반죽으로 저며드는 어여쁜 날씨였다. 여전히 너는 내 곁에 찾아와 시와 같은 은유의 낱말들을 한 편씩 읊어주고 떠난다. 너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다. 미안해 말라는 가늘고 무거운 한 마디를 덧붙이는 일도 잊지 않는다. 내가 아닌 네가 이런 것들을 누리고 살아내고, 그랬어야 한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빨랫줄에 두서없이 내걸린 속옷들처럼 부끄러움 모르고 펄럭이는 심장이 일순간 멈추었으면 했다. 아팠던 일들은 어느새 봄날 밤공기처럼 어스레한 향수가 되어 스쳐 지나갔다. 걔들은 이윽고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허무한 시간, 추억. 그리고 언어. 그럼에도 영영 사라지지 않을. 존재하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 내 발목을 살며시 감싸 쥐는 듯했다. 좁은 길에 나있는 해진 선을 주욱 따라 걷다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있는 곳엔 네가 쭈뼛대며 수줍은 얼굴로 서 있었다. 구슬프고 새하얀 우리의 청춘. 찾지 못한 우리의 자유. 그리운 너의 냄새. 다시, 너.   


헤매던 날개는 우리의 등에 있었다는 것을.

내가 너무 늦게 알아주었다, 너를.


겨울만 존재하는 계절에 살던 우리는, 이윽고 헤어짐을 맞이한다. 겨울만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너와 나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물리적 거리적 헤어짐을 뜻한다. 그렇기에 헤어졌어도 아랑곳 않고 마음을 나눈다. 네가 지나는 길거리엔 언제나 내가 있고. 누구 하나가 고개를 들거나 몸을 삐죽 내밀어 환영하지 않는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 다음 날에도. 반드시 만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쌓인 것이 아니다. 외 호숫가 얼음판 위에 얇은 물이 한 겹 두 겹 쌓여 누구도 부술 수 없는 얼음 궁전이 되듯이. 그 누구도 깰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증표이자 낙인이다. 너와 내가 더해 온 마음의 근육은 깨지지 않는다. 그게 깊숙이 달구어진 우리의 관계다.     


무수히 사랑하는 너에게, 사랑이 끝나지 않은 이곳에서.

묵혀둔 엽서를 잘근잘근 매만지다 

얇은 강바람에 슬며시 띄운다.

행복이라는 걸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기억해 줘.

네가 있는 그곳이 바로 행복이라는 걸.     


여기엔 너도 있고, 네가 있어 행복한 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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