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습니다’ 지친 글씨체를 품은 몰락한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 안에는 사람이 담겼고, 눈물이 담겼다. 희미하게 바래진 사진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목적지가 불분명한 열망. 찾는 이는 아직도 거리를 헤매며 눈물을 훔칠 것이고, 찾아지는 이는 어디선가 마음을 잃은 채 쪼그라든 얼굴을 뭉쳐 들고 앉았을 텐데. 푸른 먼지의 목적지. 내 기억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무지 이야기를 적어낼 기록의 지팡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투명한 옷더미 속에서 쪼개진 시간을 찾았다. 황급한 시선은 서툰 우리를 추악하게 만들고. 없던 허무함마저 생생하게 띄워내었지. 사랑을 해서 미워지는 걸까, 미워해서 사랑을 갖고 싶은 걸까. 밤새 밀어내며 화마의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당신이 하루아침에 햇살 같은 품으로 나를 끌어안는 것처럼. 모순의 방식,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일 수밖에 없었던 것들은 형성으로 엮이고 있다. 모양이 제멋대로, 헐거워진 자물쇠. 분명 믿을 수 없는 눈초리를 서로에게 쏘아대고 있지만.
네가 있어야 산다는 말이, 네가 없으면 죽는다는 말과 같다면. 혹은 다르다면, 또는 공존할 수 없는 감정이라면. 모두 거짓 같아. 어느 날 당신은 건넸고, 나는 영문을 모르고 받았다. 한참을 아팠던 무렵. 떠나갈 것들이 두려워졌다. 너무 깊은 사랑을 방패막으로 현실을 잊는다는 사람들에게. 그게 너무나 두려워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너에게. 나는 쓴다. 네가 보여주었던 세계의 낱말과 수평선 너머의 호흡과 따끈한 하와이안 차를 곁들여서. 어차피 삶은 일렁이는 것이라고.
사랑이 지옥인지 구원인지 너는 밤낮을 고민한다.
무심코 떠오른 불꽃 외곽에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내가 있었고, 긴 숨을 내쉬며 들여다본 내부에는 찌그러진 채로 갇힌 네가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두려워 눈을 질끈 감았었어. 망친다는 건 평생을 미안해야 할 일이겠지. 셀 수 없는 단어로 영원을 덧칠하다 보면 항상 당신이 나를 보러 왔었는데. 아찔한 프리지아 향기. 고체 비누가 맞는지 물으니 아니라며 살포시 웃는 당신에게. 미안하고 미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나는 적는다. 당신의 말을 받아 쓴다. 변한 마음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하나이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밤새 몸을 뒤척였던 날.
사람을 찾지 못해서 우는 사람들. 찾아지지 않고 싶어 도망치는 사람들. 경계 속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처럼 우리는 드러누워 있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면 그대로 두었어. 이미 본 적 있거나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그러나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세계의 붉은 사춘기를 겪는 것은 확실해 보였던. 당신은 가만히 있자고 말했다. 잠시만 이렇게 있자고. 눈빛에 빨려 들어가는 게 두려워 오래 응시하지 못했던 동그란 신호등. 내가 보았던 가장 최초의 불꽃. 생전 처음 해 본 놀이 같았던 밤과 새벽 사이. 꽃을 닮은 입꼬리.
어디서 시작되었나.
떠나보내지 못하는 무언의 감정들.
언젠가 내가 가야 할 곳.
어제의 기억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돌아갈 곳이 없는 들꽃은 돌아갈 곳이 있는 초원을 기억하곤 해. 부러워하고 동경하지. 아니, 그게 아니야. 실은 추억하는 거야. 돌아갔다면 행복했을 먼 옛날의 맑은 향수를. 없지 않고 있지 않아서, 큰 이유 없이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거야. 어쩌면 좋니. 아프지 말자더니 온종일 아파할 날들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 보고 싶어서 눈물 날 너를 어쩌면 좋아. 우리 그냥 도망칠까. 네 슬픔까지 내가 끌어안을 수 있다면.
그토록 애달팠던 사람들은 이제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다. 잔인하게 막을 내린 한 편의 연극. 보관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반쯤은 바스러진 감자칩을 한 움큼 손에 쥐다가 풀었다가. 도저히 입에 밀어 넣지 못하고 전부 토해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자꾸만 속을 게우게 된다는 너에게. 어떤 이별도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헤어짐은 연속 같아. 아픔은 무뎌지지 않는 기차역과 피어난 들꽃 사이로 흐릿해지려 애쓰는 통로를 기다림 삼아 체구를 줄여가고 있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었어.
서로에게 뜨거운 꽃말을 지어주던 때, 태워진 종잇조각들은 땅으로 파묻히지 못하고 전부를 기억하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잊지 않고 싶어 노려보는 행동. 미처 채우지 못한 사랑의 결말. 네 부드러운 머리칼이 내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동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아니었다면 평생을 몰랐을 마음을, 나는 지금까지도 갈망한다. 찾지 못해서, 찾을 수 없어서, 영원히 찾아 헤매어야 했던 어떤 여자의 이야기. 막이 내린다. 어둠 속에서 흐느껴 울던 정체 불분명의 그림자가 녹음처럼 짙고 깊은 형체로 날씨와 배경이 되었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삼켜졌다. 마침내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