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독토독. 음산한 소리, 야심한 시각. 손톱을 깎는다. 돌린 등이 익숙해서 마른침을 삼키다 말고 묻는다. 그러면 대답한다 너는. 엄지손톱이 자꾸만 빠르게 자라. 희한하지. 점점 야위어가는 몸. 영양소를 손톱이 다 잡아먹나 봐. 억울하지 않니. 그러면 웃는다 너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들을 막을 방법은 없잖아. 어차피 깎일 운명이라는 건 자신도 알고 있을 테고. 귀찮은 인생이라고 일러주고 싶어. 그러니 잘 챙겨 먹으라고 훈계해야지. 너도 나의 일부분이 아니겠니.
그 사람의 집, 현관 앞에는 묵은 먼지를 수북하게 뒤집어쓴 전단지들이 쌓여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깊이로. 오래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신고해 줘. 너는 말했지만, 나는 신고하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있을 것을 알아. 손톱처럼 자라나는 생명력. 우스갯소리가 사람을 살리던 시절에 마주 보던 채널은 이제 문을 닫았지만.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작은 방에 붙어있는 에어컨이 덜덜거리며 몸을 떤다. 숨을 내뱉는 형상이 영 시원치 않아서 곧 숨을 거두겠거니 생각했다.
뜨거운 정수리를 외면하며 바닷가 앞에서 떠들던 사람들. 여름철 쨍한 마음을 품고 달뜬 목소리로 구원이니 영원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들을 읊조리다가 얼큰한 조개구이 더미로 사라진다. 술김에 피어오르는 한밤의 유토피아, 잊기 위해 살아가는. 슬픈 우리들. 떠나보내고 나면 떠나온 방향으로 다시 걸어가다가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을 잊게 된다며, 그걸 알면서도 돌아보지 않는 방법을 깨우칠 수 없어. 그리워할 것은 계속해서 그리워하게 돼. 그 해 여름도 그러했지. 그러겠지. 그러하겠지. 아무런 영양가 없는 낡은 해조류처럼 떠돈다고 해도, 지울 수는 없을 거야.
왜 지금 내 옆에 네가 없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알고 싶다고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모르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모를 수는 없는 것처럼.
선풍기가 목매어 울듯 탈탈거리며 돌아간다.
울지 마, 다 지나갈 거야.
어딘가에 남아있겠지. 떠나온 흔적들이 버려진 조개껍데기를 닮은 구슬픈 모양새로. 사탕 목걸이 같은 처량한 쓰임새로. 처량하다고 생각해서 더 슬픈 게 아니겠니. 흙바닥에 주저앉아서 그때 그 바닷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빗물을 한 바가지 맞으며 눈물 대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손톱이 자꾸만 자란다. 깎아도 깎아도 어김없이. 그중에 제일 빨리 자라는 손톱이 눈가에 아른거려서, 자주 보러 간다. 그러면 그놈은 보란 듯이 더 자주 더 많이 보러 오라며 달려든다. 그리웠다며 아픈 온도로 안겨온다.
너도 곧 가겠구나. 마음을 주었는데 돌아오는 게 마음이 아니었듯이.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다독이던 어른들은 지금쯤 모르는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다독였던 것처럼 자신들도 다독여지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노스탤지어 맨 꼭대기에 깃발을 꽂는 일은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도 새로운 꿈을 꾸지 않는 마을이 생겨났다. 떠오르면 잊어야 해서, 행복하면 떠나보내야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만 꿈뻑꿈뻑. 무능한 당신, 곁의 나.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뭐였나.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이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런데 잊지 못했어.
잊지 못했지만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아.
떠올리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었어.
사랑하고 싶지 않아, 사랑하지 않아.
비가 오는 것 같아.
보고 싶어.
그 사람의 집 앞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쌓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르는 숨을 쉬었고, 모르는 언어를 건넸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잊혀진 것들은 서로에게 계속해서 잊혀지기를 원했다. 발로 차인 것들의 상처는 더 이상 아물지도 아파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이 살아있는지 나는 이제 알 수 없다. 살아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토독토독. 손톱 깎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지간히 자란 손톱이 자라고 자라서 스스로 자라길 멈출 때까지 손톱을 깎는다.
비가 오는 것 같다. 그날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