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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람 Aug 19. 2024

변하지 않는 것

저번 주 금요일 청문회를 보니 현직 공직자들의 근무행태는 참담하고 각 정당의 국회의원들은 자기 편 이익 챙기기에만 여념 없어 발언들의 진정성이 의심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나라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여러 문제들을 보니 과연 이 사태가 진정이 될 지에 대한 기대는 점차 줄어 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성형외과 공부는 놓기 싫어서 틈나는 대로 공부 중이다. 그 중에서도 미용 수술은 대학병원 근무 중에도 잘 보지 못한 수술들이 많아, 이 기회를 삼아 미용 병원 수술 참관을 여러 차례 가고 있다. 


저번주 에는 나 이외에도 아산 병원에서 교환 전문의 프로그램에 참석한 말레이시아 선생님이 내가 참관하러 가는 병원에 오셔서 같이 수술 참관을 할 수 있었다. 올해 3월에 한국에 오게 되셔서 근무중인 전공의를 전혀 보지 못한 상태이셨다. 말레이시아는 모든 환자들이 의료 보험에 가입된 상태가 아니라 우리나라 만큼 진료 접근성이 높지 않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의 전공의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들었다고 하였고, 현 전공의들의 근무 중단 사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신 상태였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근무 중이셨는데, 그 곳은 큰 병원이 4개가 있고 Public, private 그리고 다른 2개의 기관이 있다고 하였다. 본인은 public hospital 에 근무중이며 그 병원에도 환자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학생 때부터 세계의대생연합 같은 프로그램에 참석한 적이 있어, 다른 나라의 전공의들과 몇 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유럽 전공의들은 출근 시간 9시 - 3시 퇴근이 잘 보장 되어 있어서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도 내가 스페인을 방문했던 2015년 2월에는 전공의들이 파업중이었다.) 아시아 전공의들은 대부분 비슷한 문화권이라서 그런지 근무 시간은 거의 비슷했지만, 가까운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 전공의들의 노동 강도는 비교도 안되게 높았다. 


아시아 권 전공의들이 하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매우 수직적인 구조의 근무환경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만났던 대만 성형외과 전공의 친구들은 옛날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년차가 달라도 서로 호형호제 하고 교수님들과도 꽤 친근한 사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뵙게 된 말레이시아 선생님도 본인이 1년차일 때는 수직적인 분위기가 팽배했고 고년차들로 부터 bullying 을 당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본인이 년차가 올라가게 되면서 그런 분위기를 많이 바꾸었다고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니 결국 누군가가 틀을 바꾸지 않으면 시스템이 변하지 않고 지속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대만이나 말레이시아의 병원은 굉장히 큰 병원들이라 두 병원 모두 년차별로 3명 씩 있고, 총 12명의 전공의들이 근무 중이라 일의 부담이 적었다고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근무를 했을 때, 년차별로 인원이 적으면 일이 많아 힘들었지만, 인원이 많을 때는 괴롭히는 윗사람이 많아서 더 괴로웠다. 결국 성형외과 의국의 고년차로부터 저년차에게 일을 내리는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누군가는 하루 종일 고통받고 퇴근하지 못하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만일 병원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내년 또는 2년은 지나야 할 것 같은데, 그 전까지 4년차 공부를 다 끝내는 것이 목표다. 병원에 돌아가서는 모든 전공의가 비슷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연차별로 하는 일을 다르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 별로 교수님을 정해 각 교수님의 환자를 한 전공의가 모두 담당하는 파트제로 바꾸어 볼 지 고민이다. 현재 우리 병원의 성형외과의 경우 1년차가 드레싱, 입원 환자 처방, 응급실, 협진 환자를 모두 보는 시스템이라 1년차는 매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그 중에 또 일을 잘 못하면 윗년차들의 비난이 쏟아 지니 하던 일도 더 못하게 되고 취침 시간은 갈수록 늦춰진다. 


타과 (이비인후과, 외과) 의 경우 이미 각 파트 별로 일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각 과의 예시를 보고 틀을 모두 바꿔 볼지 고민 중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1년차 때 고생을 많이한 선생님들이 본인은 이런 제도가 바뀌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전공의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일단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오래 뿌리 잡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씩 바뀌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변화들은 결국 누군가가 크게 변화를 일으켜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나부터 변하게 된다면 그 이후의 일도 연쇄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한 결심을 잊지 않고 병원에서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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