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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blue Apr 05. 2022

슬기로운 공주 읽기 1탄 : 백설공주_10

10화 : 슬픈 웃음

[지난 줄거리]

사신단이 출발하기 전날  백설에게 찾아온 중년의 사내는 라오스의 지인으로 친구들이 백설을 구하러 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븐 왕국에서는 아르델 왕국에서  서신으로 매일이 전쟁터였다. 신하들은 공주의 거처를 끝까지 함구하는 왕비에게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들먹이며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다. 왕비는 권위를 앞세워 공주의 일에 일체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르델 왕국에서는 사신단이 피오나 왕국으로 가는 여정길에 올랐다. 윌리엄 왕자는 백설에게 어떤 물건을 하나 꺼내 보이며  정체를 묻기 시작한다.

10 : 슬픈 웃음 


—-


“네 옷에서 나온 물건이다. 대체 이게 무슨 물건이냐?”


윌리엄이 꺼내 든 물건은 왕비에게 받은 거울이었다. 백설은 어딜 가든지 거울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나 힘들거나 지칠 때마다 거울을 꺼내 멍하니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아르델 왕국에 끌려 온 후로는 도통 거울을 볼 여유가 없어 깜빡 잊고 있던 것을 왕자의 손에서 발견한 순간 백설은 당황해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그.. 그건..제 거울입니다. 돌려주시옵소서.”


“오호라.. 거울이라.. 그런데 왜 비추어도 아무것도 보이질 않느냐?”


“어머니께 받은 물건입니다. 저도 아직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사연을 듣고 보니 더욱 탐나는 물건이구나… 잠시 가지고 놀 게 해주겠느냐? 비추어도 보이지 않는 이 거울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가끔은 자신을 마주하면서도 보기 싫을 때가 있거든. 그럴 때 쓰면 아주 유용한 물건이 아니겠느냐?”


윌리엄 왕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고삐를 잡아 다시 앞질러갔다.


백설은 그날 처음 윌리엄 왕자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입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크게 웃어댔지만 웬일인지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지금껏 말이 험하고 성미가 고약한 면만 두드러져 몰랐지만 백설은 윌리엄 왕자의 웃음 속에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


피오나 왕국은 아르델 왕국의 사신단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대신들과 함께 대책을 강구했다.


“아르델 왕국에서 데려 온 가짜 왕자가 맞다고 하고 속히 사죄한 후 사태를 마무리지으면 어떻겠사옵니까?”


“당치도 않소. 시리우스 왕자님께서 돌아오셨는데 굳이 우스운 꼴을 당할 필요가 있겠소? 그간 왕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던 건 병환이었다고 하면 되지 않소.”


“아르델 첩자가 없는 나라가 없소. 그 나라의 정보력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오. 일의 전후 상황이 꼬여 있긴 했사오나 이븐 왕국의 백설 공주가 시리우스 왕자와 함께 지낸 1년 가까운 시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우를 범치 마옵소서.”


피오나 왕국은 진퇴양난의 기로에 섰다. 그 어떤 선택을 해도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두 나라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방향으로 힘이 실리고 있었다.


“시리우스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할 생각은 없네. 그렇다고 거짓으로 들이미는 왕자를 짐의 아들이라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받아주는 것도 그들 의중에 놀아나는 일 밖에 되지 않을 걸세. 거짓으로 걸어오는 싸움이라면 이쪽에서도 똑같이 거짓으로 받아쳐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신하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국왕은 잠자코 앉아 있던 피오나 공주를 바라보았고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델 왕국을 속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시각 시리우스는 성 안에 조그맣게 마련된 신전에 홀로 앉아 모든 기대와 희망을 버리고 도망쳤던 1년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는 나약한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깨닫자 슬픔이 복받쳐 올라왔다. 그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며 빌어 볼 뿐이었다.


“제발 무사해야해…제발…”


—-


아침 일찍 출발한 아르델 사신단은 별일 없이 예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해서 아르델 왕국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왕자님, 아르델 국경을 벗어나면 깊은 숲이 나옵니다. 여기서 하룻밤을 쉬고 내일 동이 트는 대로 다시 출발하심이 나을 듯합니다.”


“그래, 그리 준비하거라. 내 침실에 저 계집도 같이 들여라. 성 밖에서 밤 시중을 들 사람이 없으니 누구라도 자리를 대신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르델 왕국의 병사들이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하고 숙소 정비를 마무리할 즈음이 되자 해가 저물고 칠흑 같은 어두움이 사방을 뒤덮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근처가 아니라서 그런지 해가 저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한밤중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왕자님께서 이 옷으로 갈아입고 침소로 들라하셨다. 서둘러라.”


백설은 옷을 갈아입고 윌리엄 왕자의 침소 앞에 섰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지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왕자님, 계집을 들여보내도 되겠는지요?”


“들여라.”


잔뜩 긴장한 상태로 등이 떠밀려 왕의 침소로 들어가게 된 백설은 왕자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 있었다.


“저…왕자님, 곧 혼례를 앞두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왕자님의 곁은 그분을 위해 비워놓는 게… “


윌리엄 왕자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백설의 팔목을 덥석 붙잡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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