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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밖백선생의어깨동무 영화드라마편
삶, 사람, 사랑...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1998) 커다란 탱크다!
by
집밖 백선생
Nov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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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1998)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출연: 로베르토 베니니, 니콜레타 브라스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린 시절 현관 앞에서 아빠와 있었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우리
딸 정도의 여섯 살가량 된 것 같다.
예비군 훈련을 가려고 군화를 신고 있는 아빠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난 백설공주가 되고 싶다고 했다.
너털웃음을 웃으며 왜냐고 물었다.
내가 백가니까 백설공주지, 그럼
엄지공주 하나?
난 엄 씨들은 엄지공주가 되는 줄 알았다.
신 씨들
은 신데렐라 공주가 되고, 인 씨들은 인어공주, 라씨들은 라푼젤 공주 등등..
다들 좀 특이한 성들의 공주들이 많아, 나도 특이한 성이니 공주가 될 줄 알았다.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어린 시절 자전거로 학교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글짓기 과제를 도와주기도 하고,
나 없을 때 식구들끼리 짜장면 먹으러 간 것이 미안해서
동생들 몰래 나만 동네 "보배원"에 데려가서 짜장면을 사주기도 했던.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빠였지만, 지금 회상해보면 속정은 참 깊으신 아빠셨다.
이 영화는 우리들 중 누구에게나 다 갖고 있는 아빠와의 추억을 소환시킨다.
삶이란 글자를 보면 인생을 응축시키고 있는 듯하다는 생각을 늘 했다.
산처럼 생긴 시옷.
거대한 산처럼 우리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숱한 과제들을.
각양각색의
사람(ㅏ)들이 만나 함께 풀어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때로는 잘
흐르기도 하는 유음인 리을(ㄹ) 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닫히고 도무지 굴러가지 않아 속으로만 간질거리는
미음(ㅁ)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흐르다 막히다 하며 우리 앞에 떡하니 버텨있던 산과 같은 과제들을
하나하나 넘어가다가
더 이
상 풀어가는 모습, 즉 리을도 미음도 없어지면 "사"하는.
리을과 미음 사이를 사람(ㅏ)으로 연결하여 "람"을 붙이면 "사람"이요,
기왕 살아가는 거 둥글게 살자고 간지러운 미음을 둥글둥글 굴리면 "사랑"이니,
내게 삶, 사람, 사랑은 늘 같은 글자였다.
미음을 둥글려서 나오는 사랑 중 최고의 사랑은 가족에게 있다.
이 영화는
그중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다.
산이 너무 높아 다들 리을도 미음도 다 잊어버릴 때,
아버지 귀도는 아들 조수아에게 리을과 미음을 유쾌하게 선사하며,
"사"하지 말고 "삶"하기를 보여주며 가르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리을과 미음을 조수아에게 건네 스러지더라도.
나의 아빠, 내 아이들의 아빠, 내 아빠의 아빠들은 귀도처럼 이렇게 유쾌한 아빠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산들을 넘어가며,
과제를 해결하는 법을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산 많
은 인생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한참 일에 매진하셨던 내 나이 때의 아빠의 모습처럼 지금 딱 그렇게 내가 살면서,
어릴 때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며
아빠 앞에 놓여있던 산들을 이제는 내가 보는데.
그 가장 큰 산이 바로 우리였다는 점, 가족이었다는 점을
이제야 이해하며.
딸내미들
백설공주 만들기 프로젝트 산을 넘으시느라,
참으로 열심히도 넘으셨다.
그래도 귀도처럼 좀 유쾌하고 유머러스하셨더라면 어땠을까,
내 아이들에게 내 남편이 귀도처럼 저렇게 재미있고
센스 있는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싶어도.
날 낳아준 우리 엄마 눈 닮아서 내 눈도 저렇게 과묵하고 재미없는 남자한테 꽂혀 결혼했으니, 그런 비현실적인 소망은 그저 부질없는 허공으로 날려버리고.
다들 생긴 모습과 마음과 성격 다르고, 처한 시대와 나라와 환경 달라도.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운 건 삶이 사람이고 사랑이니까.
인생의 산 중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고 내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있는 절대치의 산이
귀도와 도라와 조수아였으니까.
가족이고 사랑의 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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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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