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절 난 남편에게 투명한 유리창 같다고 했다. 남편 곁에 있으면 늘 바닷소리가 났다. 그게 좋았다.
남편은 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늘 고요했고 큰 감정의 변화가 없이 잔잔했다. 나처럼 늘 요동하고 감정의 기복이 큰 사람에겐 매우 든든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어떤 말도 다 들어주고 어떤 기분도 다 받아주었다. 이런 관계는 받아주는 쪽이 질릴 만도 하지만 남편은 특이하게도 이걸 재미있어했다. 즉 늘 같은 그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가 재미있는 것이다.
그의 곁에 있으면 춥지 않았다. 어떤 때 그의 내면에 일렁이는 파도 같은 걸 느낀 적이 있었다. 마치 겨울바다처럼. 그건 주의 부름 받은 자로서의 사명 같은 것이었다. 그 방면만큼은 강인한 겨울바다였다. 순교도 영광으로 감수할 수 있을 만한 확고함. 아마 연애 시절 난 그에게서 일렁이는 이 겨울바다를 보고 결심을 했던 듯하다. 그의 겨울바다는 춥지 않았다. 그가 투명한 유리로 바람을 맞으면서도 아름다운 바다 저편을 내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한 유리창 같은 사람. 자신이 바람이든 눈비든 다 맞아도 저 편 바다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가족에게, 성도들에게 보여주며 조용히 나아가는 사람. 늘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는 남편.
오늘 그가 많이 속상했나 보다. 그가 속상할 정도이면 정말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인내와 끈기만큼은 조선 최고라 믿는 그가 저렇게 속상할 정도면... 정말 이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럴 때 나는 그냥 곁에 있어준다. 이건 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게 요구했던 단 한 가지이다. "그냥 곁에만 있어줘."
은희경 작가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아내와 애인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남자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아내는 말로 위로를 해주는 반면, 애인은 그냥 있다는 것 자체가 위로라고. 이 기준에서 본다면 난 아내지만 늘 애인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악담을 퍼붓는 악당 같은 악처라도 애인으로 아내로 사랑하고 지켜주고 소중히 보듬어주는 남편. 많이 맘이 힘들었는지 초토화됐다. 말이 원래 그래. 어떤 총보다도 강력하고 어떤 칼보다도 잘 베지. 멍청한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자신의 혀를 녹슬게 만들어. 힘내지 마. 내가 있을 테니까. 이번에 힘내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