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그리고 15년.

사랑한다는 것은 계속 보는 것

by 집밖 백선생

벌써 15년이 다 돼가네. 우리 처음 만났던 12월 29일. 크리스마스가 있는 이 맘 때는 늘 바쁜 시기였지. 성탄절 이브는 연인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라지만 교역자 혹은 그 가족으로 사는 우리들은 언제나 안 보이게 교회일 치다꺼리해야 했지.

당신과 친구였지만, 서로를 남몰래 좋아하던 시기. 우린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바다에 갔었지. 밤바다는 짠내, 습기, 출렁이는 소리로 그 존재감을 알려주었는데. 그날 바다에서 파도랑 놀다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바닷물에 빠졌었지. 키득키득 까르르 웃으며 해변에서 놀다가 지친 나를 업어줬어. 신발이 젖어서였던가? 그땐 45kg 정도밖에 안 되는 마른 체형이었기에 그닥 무겁진 않았겠지만, 가볍게 휘리릭 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당신의 넓다란 등판이 무척 든든했었어.

내가 좋아하는 남자 등에 업히던 그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 어찌나 설렜던지! 당신은 어깨가 특히 넓고 덩치가 있어서 정말 안정감이 있었거든. 하나 힘든 기색 없이 가볍게 척 업고서는 해변을 걸어가는데... 그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싶더라.

내가 겨울 되면 손이 잘 트고 매우 차가웠지. 난 추운 걸 정말 못 견뎌했는데, 그해 가을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추워서 덜덜 떠는 내 손을 우연히 잡아보고는 손이 얼음장같다며 손을 쪼물딱 쪼물딱. 손을 녹여준다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당신은 나를 볼 때마다 손을 쪼물딱거리는 게 자연스러워지는데... 아무리 친구래도 명색이 남녀 간에 이렇게 손을 쪼물딱 거리면 어쩌자는 거냐구.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데.


나는 어쩌다가 이 친구가 손을 쪼물딱 거리는데 말도 못 하고 있고, 업혀서 좋아라 하고 있을까. 내가 좋아하니까 그렇다손 치고. 이 인간은 날 여자로 좋아하는 것 같진 않은 것 같은데... 이 사람, 혹시 꾼 아냐? 순진하게 생겨서 착한 얼굴 하고서는 괜스레 이 여자 저 여자 찝쩍거리는? 아무래도 내 마음 더 나아가기 전에 그만 그쳐야겠다. 더 이상 상처 받기 싫거든. 연애는 정말 지긋지긋해. 그래서 그렇게 당신을 한동안 피해 다녔지.

피해 다니면 다시 찾아오고, 만난다고 해도 크게 진전될 기미는 안 보이고. 맘을 정리하려는 중이라 그런지, 당신이 나를 찾아오면 더욱 맘이 힘들었지. 그래서 다신 안 볼 각오를 하고 말해버렸어. 난 널 친구로 볼 수 없어서 맘을 정리하는 중이니,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

2006년 12월 28일에서 29일로 넘어가는 자정쯤 내 차 안에서 있었던 그 말은 당신과 멀어지기 위해 던진 말이었는데, 역설적으로 이게 고백이 돼 버렸던 거야.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털어놨으니까.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그럼 그렇다고 표현을 하던가! 왜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먼저 나오게 만들었냐고, 두고두고 욹어먹었지. 당신은 손을 쪼물딱 거린 게 벌써 표현한 거 아니냐고, 내가 도망가면 계속 쫓아온 게 표현한 게 아니냐고 그랬지. 내가 눈치 없는 거라고... 아냐! 난 확실히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왜 말 안 했냐고 두고두고 성질을 부렸어. 혹시 말했다가 거절당하면 친구로도 못 볼까 봐 그게 무서워서 말 못 했다고.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당신에겐 사랑인 거야. 볼 수 있는 끈을 어떤 거라도 잡고 싶을 만큼 보고픈 사람, 그게 당신에겐 사랑하는 사람인 거야.


여하튼 여자인 내가 먼저 고백하게 만든 걸로 책 잡힌 당신은 지금까지 한결같이 내겐 정말 잘하지. 늘 곁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주고 아껴주는 유일한 사람. 당신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급선회했던 15년 전 오늘부터 늘 같았어.

내 흑역사 연애스토리들을 다 아는 당신. 내가 바다에서 이별했던 기억이 있어서 바다에 가는 길을 유독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만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에 함께 만리포해수욕장에 갔었지. 아픈 기억 다 잊으라고, 당신이 새롭게 도배해주겠다고.

그 후론 바다 가는 길에서는 늘 당신의 향기가 나는 듯해. 당신에게 친구로 있을 때 너무 많은 연애 흑역사 얘기를 한 것이 걸렸었는데, 당신은 늘 개의치 않아했어.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건 그거 하나였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라고.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세상에 나서 살아가는 동안 당신만큼 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부모님께 미안하지만, 우리 부모님도 당신처럼은 나를 사랑해주진 못했어. 당신을 만난 지 15년째 되는 이제야 당신 말이 맞음을 알겠네. 맞아, 사랑은 계속 보고 싶은 거야. 사랑한다는 건 계속 보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란 계속 곁에 있어주는 사람인 거야.

우리 노년에는 꼭 바다 보이는 곳에서 살자. 꼭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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