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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한 Oct 21. 2021

<키워드 글쓰기: 멀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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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셨습니까?”


나와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가 없었으니까?


“또 왔다고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안경을 바로잡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와 같이 온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옆에 서 있는 간호사가 입술을 꽉 깨물고 서 있다는 느낌은 착각이었을까? 선생님의 그 말을 듣고 나와 그녀는 잠시간 서로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이렇게 잠시라도 바라보는 건, 내가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기에 예뻤지만 에쁘지 않아 보였다. 


”아.. 네.“


나와 그녀는 곧 접수를 하고, 입원을 하고, 시술을 받았다. 세상은 극히 발전했다. 인류의 최대의 발명이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어트 약이라는 건 참 재밌다. 메타버스가 유행하는 이 시대에도, 인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신체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기억이 사라지는 병은 이제는 없다. 치매가 이제는 완치가 가능한 병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제는 일정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범죄자에게 자신의 범죄와 범죄의 계기가 되는 기억을 지우는 기술은 국가의 허락안에 시행된다.


그런 기술이 나오면 국가가 통제를 한다고 해도, 밤의 시간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나와 그녀가 찾은 이유다. 


우리가 서로 사랑했던 기억을 지우는 일. 

국가에서 제3등급으로 지정된 기술이었다. 이 기술 자체가 네트워크의 신호로 걸리기 때문에 불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돈을 꽤 많이 써서 승률이 좋은 변호사를 구하면, 나름대로 어렵지 않게 시술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의사 선생님과의 나왔다. 예전에는 놓지 못했던 두 손길이 허공을 뛰우고 있었다. 


”...“


문득 습관처럼 그녀의 손길을 잡으려다 그만 멈춘다. 그녀도 깜짝 놀란 채 나를 쳐다본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스크린 위에 뜬 그녀의 얼굴. 내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첫마디. 


”뭐 좋아해요?“

”그건 왜요?“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걸 알고 싶어서요“


그런 추억이 이제 이제 한 올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일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그런 일이었다. 


*


수술실로 들어갈 땐 둘이었던 거 같지만, 나올 때는 혼자였다. 


”아.. 여기는..?“

나는 무슨 수술을 받은거지? 여긴 병원인데. 간호사가 내 앞으로 온다. 요즘은 남자 간호사가 3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내 앞에 남자 간호사가 오니, 조금 어색하다. 


”퇴원하셔도 됩니다.“


내가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 물어보는 건 바보 같은 일이겠지? 어서 집에가서 라이브나 해야지.


*


뭔가 오랜만에 온 집이었다. 내가 얼마나 입원해있었지? 무려 일주일이라고? 도대체 무슨 일로. 난 아픈데가 하나도 없는데. 뭔가 여기가 시린 거 같은 건.. 또 왜지..


가득 채우고 있었던게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허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이유가 없었다. 어디선가 있을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눴던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지만 아니었다.


뜯겨나간 벽지. 무언가를 붙인 흔적들.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나름 수능도 1등급으로 전국, 아니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대학 졸업증도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라이브나 해야겠다.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른다. 1초도 안되서 로그인 화면이 든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키는데, 선화야 사랑해? 라는 비밀번호가 문득 떠오른다. 선화..? 서동요에 나오는 선화공주인가? 내가 선화공주를 그렇게 좋아했나?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라이브 캐릭터를 접속한다. 여전한 내 캐릭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낙시터로 향한다. 


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 게임, 라이브에서 왜 하필 낚시 컨텐츠를 즐기라고 하는데, 나는 이 메타버스 속에서의 낚시가 어쩐지 실제 낚시보다 재밌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본다. 실제 모습은 아니겠지만, 게임 속 캐릭터들의 낚시 모습. 그러다 가까이 가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얼굴을 볼 수도 있는데, 가면을 쓴 사람도 있고, 사진으로 대체 해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쩐지 익숙한 자리에서 낚시를 한다. 이곳은 사실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노을의 모습이 제일 예쁜 자리다. 실제 어딘지 모를 곳에 설치 된 카메라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라이브는 그런 공간이었다. 실제의 여러 곳을 게임 속에 담으며 많은 현실을 볼 수 있었다. 게임속에서 보는 현실. 색다른 게임. 이름 자체도 그래서 라이브였다. 


”예쁘네..“


그러다 문득, 내 옆에 쭈뼛쭈볏 거리는 한 캐릭터가 있었다. 


”아, 이 명당을 어찌알고..“


나도 모르게 이 오프라인의 공간에서는 혼자이기에 목소리를 냈다. 자동으로 게임속에도 가까운 캐릭터들에게도 들린다는 사실을 까먹고 말았다. 


”어, 아세요 이 명당?“


여자 목소리였다. 괜히 설렜다. 그녀의 이름은 선화라고 했다. 나는 무의식속에서 어. 선화요? 라는 말을 꺼냈고,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현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라이브 밖을 나와 라이브로 만나게 된다니.


내가 아는 가장 멋진 호텔에 그녀를 초대햇다. 나는 라이브 속에서 갑부에 속했고. 이 메타버스 게임의 수입은 현실에서도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라이브에 업데이트 될 공간에 대한 동영상, 즉 부동산을 미리 선점하고 구입하고 그 영상을 통해 수입을 얻는 구조였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일가견이 있었다. 이 공간도 내가 발견한 자리였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다른 곳은 홍보를 하고 그랬지만 이 공간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희미하지만 내가 가장 아끼던 사람과 함께 발견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 공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읅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그랬다. 선화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그녀를 만났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내가 그동안 그렸던 이상향을 모두 담고 있는 그녀였다. 우리는 낯을 가리면서도 마치 오래 본 사이처럼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내게 물었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

”네?? 그건.. 왜?“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게 궁금해서요“

”아..“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라이브의 공간, 그 현실의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도 놀랐다. 자신도 알고 있는 장소. 그 공간이 구현되어서 놀랐던.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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