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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Nov 14. 2017

입덧에 대한 가설과 실험



            

한 여자가 뜬금없이 헛구역질을 하고는 깜짝 놀라 혼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세어본다. 그리고 ‘설마?’ 하는 눈빛으로 생각에 빠진다. 다음 컷은 그 여자가 산부인과를 나서는 장면. 의사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들린다.

“축하합니다. 3개월입니다.”


오래전부터 드라마에서 보던 빤한 장면. 어린 나는 입덧이 임신의 신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장면이 얼마나 부주의한 묘사인지 안다. 일단 생리가 3개월씩이나 늦어지면 임신이든 아니든 병원에는 가봐야 한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라면 자기 생리 주기와 몸 상태에 더욱 민감해지는 법인데, 드라마 속 인물들은 왜 다들 그리 둔감했던 걸까. 게다가 임신 3개월 정도면 대개 입덧이 슬슬 끝나갈 시점이다.


현실은 보통 이렇다. 입덧은 임신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임신의 인지 자체가 입덧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건 나도 처음 알았다. 경험 있는 친구들이 말하길, 임신의 여러 증상은 임신 확인 후 더 분명히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입덧은 신체보다는 정신의 문제인 것 같았다. 몸의 변화는 나도 어쩔 수 없지만 정신의 영향이라면 내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무렵, 어느 날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입덧은 안 해?




알림음을 듣고 무심코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는데 저 문장이 눈에 훅 들어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속이 울렁울렁 거세지더니 목이 간지러워지면서 입에 신맛이 돌았다. 임신을 다시 인지한 순간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

‘이거구나!’

그 순간, 내가 여기서 쉽게 넘어가면 향후 2,3개월간 하루 종일 변기를 끌어안고 살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구토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그게 특히나 싫었다. 입덧을 하며 몸도 마음도 지친 채 힘겨워했던 지인들의 모습이 스쳤다.


예술가는 자기 삶으로 실험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나는 나름의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가설은 이러했다.


“입덧은 정신력의 문제다.”


그렇다면 의지와 이성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도 있다. 의지는 생각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입덧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윽! 입덧이다!’ 혹은 ‘임신해서 그렇구나’ 같은 생각을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속이 울렁거리면 의지를 다해 먼 미래를 상상하거나 지인들의 안부 혹은 사회 문제를 떠올리며 물을 마셨다. 그러면 곧 잦아들었다. 울렁거리다 못해 구역질이 날 때면 자동으로 몸이 구부려지는데, 나는 일부러 허리를 곧게 폈다. 그리고 물을 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다른 이슈들을 떠올렸다.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정신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반응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냉장고 냄새. 이상하게 우리집 냉장고는 유독 냄새가 심했는데 입덧 중이니 더 괴로웠다. 누군가 냉장고를 열면 나는 지옥문이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방에 뛰어들어가 문을 닫았다. 싱크대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부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두 번째는 양치질이었다. 어금니 안쪽을 닦을 때면 여지없이 구역질이 났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살살 닦으니 또 치석이 쌓이는 느낌. 그래서 양치질에도 마인드 컨트롤을 적용해보았다. 덕분에 구토까지는 하지 않았으나 양치질을 할 때마다 매번 구역질을 계속했고, 심할 때는 바로 헹구고 뛰쳐나와 물을 벌컥벌컥마셨다.


세 번째는 공복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에 조금 밍기적거리다 일어나면 확 어지러워지면서 구역질이 났다. 산전검사 결과 내게 가벼운 임신성 질환이 있다고 밝혀져 약을 처방 받았는데 아침마다 공복에 복용해야 했다. 그러니 일어나자마자 바로 허기를 채울 수도 없었다. 약 먹으면서 그냥 물이나 마셨다. 평상시에도 허기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구역질이 올라와서 늘 간식을 챙겼다.



입덧은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컨트롤하니 꽤 참을 만했다. 많은 이들이 입덧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물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됐다. 입덧을 참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그냥 입덧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직 심해지기 전이라는 것. 진짜가 오면 참을 수조차 없다.


내게도 그런 날이 왔다.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 목 아래쪽에 뭔가 걸려 있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나는 보통 기침 형태로 구역질을 했는데 이번에는 반동이 크다고 할까? 내부에서 솟구치는 힘이 전과는 달랐다. 진짜가 온 것 같았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럴 때 보통은 허리를 펴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하면 곧 가라앉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다. 성난 군중처럼 속이 일어나서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 적군이 커다란 나무기둥으로 성문을 쿵쿵 찍어내는 것 같았다. 이건 못 참겠구나, 직감으로 알았다.


때를 만난 위장은 있는 힘껏 내용물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공복 상태였기 때문에 나오는 건 타액과 위산뿐이었다. 누군가가 내 온몸을 빨래짜듯 거세게 비트는 것 같았다. 구토는 예나 지금이나 괴로웠으나 예전에 체했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 들었다. 일종의 비장함이랄까. 내 아이를 키우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고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고통을 견뎌내겠다는 의지가 샘솟는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건 생의 강력한 의지가 하나 더 생기는 일. 살아야겠다는 이유가 생겼다. 이 정도면 꽤 아름다운 이유 아닌가.



입덧이 시작되면 남편들이 바빠진다. 부엌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나는 종일 누워만 있었다(최소 8주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누워서 지내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면 남편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환기를 시킨 다음 불러내거나, 사식 넣어주듯 침실로 식사를 갖다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숨겨진 재능이 빛나기도 했는데, 내가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레시피를 검색하여 훌륭히 해내는 것이다. 그는 프리랜서라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작업이 많을 때면 바쁘게 지냈다. 그 와중에 요리와 설거지와 정리까지 다 해내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남편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 밤에는 솔직히 요즘 힘들다고 담담히 토로하더니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새봄이가 있어서 너무 좋아.”


아, 고단한 아비 새여. 그 역시 아버지가 되고 있었다.



입덧 이후 외식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뜬금없이 어떤 음식이 당길 때가 있는데 모든 걸 남편이 다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임신하고 나니 면류가 특히 당겼다. 그전까지 건강상의 이유로 몇년 동안 밀가루를 단식했지만 입덧을 하면서 소면과 칼국수와 쫄면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 특히 매콤새콤한 비빔국수와 쫄면은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주변 맛집을 검색하며 하나씩 정복해갔다.


원래 육류를 좋아했던 나는 이상하게 고기에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고기 굽는 장면만 나와도 느끼해 보여서 얼굴이 찌푸려졌다. 반대로 새콤달콤한 과일은 예전보다 더 좋아하게 됐다. 키위를 한 상자 사서 매일 먹기도 하고, 사과며 귤도 잔뜩 사다놨다. 딸기철이 시작되면 처음엔 가격이 좀 부담스러운데 그럼에도 기꺼이 사다 먹었다. 개인적으로 입덧 기간과 딸기 철이 맞물린 임신부는 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임신 초기의 구원자. 딸기.






입덧은 대체 언제쯤 끝날까. 매일 헤아려도 답답했다. 영원할것 같던 입덧은 18, 19주쯤에 끝났다. 끊어지듯 확 끝나지는 않고, 서서히 잦아들었다는 게 맞다. 양치질 입덧이 끝까지 괴롭히긴 했지만 그조차 점차 사라졌다.


입덧에 대한 실험 후, 나는 그저 입덧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측면도 분명 있긴 하지만 사실 불가항력이 더 크다. 몸이 본성을 따르며 격렬히 반응할 때 무력하게 휩쓸리는 내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분명 임신은 축복이고 축하받을 일임에도 몸이 너무 힘들면 원망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주변의 임신부에게 ‘너도 극복해보라’ 말하려던 마음을 접어두시길.



속설에 따르면 임신 증상은 모계유전이 된다고도 한다. 엄마도 입덧이 그리 심하진 않은 편이라고 했다. 임신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음식은 잘 먹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어떤 게 당기는지 걱정하며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들과 달리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 없고 새콤한 비빔국수 같은 것만 자꾸먹고 싶지?”

“와, 어떻게 아세요?”
“엄마도 그랬거든!”
신기한 일이다. 양호한 체질을 물려주신 엄마에게 감사했다.

엄마는 세 아이를 순산했으니 나도 잘 낳을 수 있겠지? 괜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입덧이 한창 심했을 때 이 괴로움을 일기로 남겼다.



뱃속에 큰 바다가 우릉우릉 넘실대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집채만 한 문어가 다리를 뻗으며 온갖 것을 다 빨아들이는 기분이다.
가만히 있는데도 뱃머리에 오른 사람처럼 어지럽다.
몸 안에 구역질을 일으키는 버튼 같은 게 있다면 누군가 내 속에서 그 버튼 바깥 부분만 어루만지며 누를까 말까 하는 것 같다.
’입덧 때문에 힘들다’는 말, 그동안 너무 자주 들어와서 큰 공감 없이 ‘그래, 힘들겠지’라고 반응했는데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 고통에 대해 말해도 다른 사람들은 이전의 나처럼 잠시 미간을 구기며 걱정하는 안색만 비칠 뿐이겠지.



곁에서 돕는 이가 많다 해도 입덧은 어쨌든 괴롭고 외로운 일이다.







새봄이의 아기공룡 시절












Cover photo by Brenda Godin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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