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보리 Apr 21. 2022

시골 뚜벅이이게 필요한 것

시골 뚜벅이 적응기



버스를 유난히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등학교를 동네가 아닌 인근의 도시로 다녔다. 원래 버스를 좋아해서 인지, 그래서 버스를 좋아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저녁으로 거의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녔던 그 시간 들을 크게 무리 없이 살았다.  버스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또 뭐가 변했는지 버스 안에 앉아 있기만 하면 어디 든 지 새로운 동네로 가서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 버스를 타는 게 좋았다. 그 이후에도 정말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돌아가더라도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버스 회사 사장 딸’ 일 정도로 서울버스 노선과 번호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 버스와 함께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였다.


그런데 시골에 왔더니 버스를 탈 일이 없었다. 우선 버스가 많지 않고, 문경은 마을버스 같은 것들도 없었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거리도 멀었고, 거기까지 가서 버스를 타느니 마저 걸어가는 게 나은 애매한 거리였다. 차가 없으면 살기 불편한 동네. 슈퍼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없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다니게 되다 보니 버스를 거의 타지 않게 되었다. 가끔 지나가다 보이는 버스가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시골 뚜벅이는 난도가 높다. 조금 많이.


우선 점촌 시내에서 문경을 오가는 버스가 있는데 기본으로 시내에서 문경 터미널까지 공통 노선이 있고, 그 앞뒤로 추가되어 운행되거나, 중간에 경유지가 추가되는 형태이다. 문제는 그게 일정한 고유 번호를 가지고 도시처럼 동시에 각자 오고 가는 게 아니라 차례대로 온다는 것이다. 맙소사! 그러니까 내 시간이 아니라 버스 시간에 맞춰서 타야 한다.


한 번은 시내에서 더 가야 했는데 점촌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와 당황하며 내렸던 적이 있다. 또 중간에 경유하는지 모르고 탔던 버스는 문경으로 들어오는 동네마다 구석구석 들어갔다. 버스가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이 생긴 굴다리를 통과하기도 하고, 좁은 마을 길 한가운데서 버스를 돌리기도 하는 곡예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40여분 이면 오는 읍내를 한 시간을 걸려 도착했다.  읍내로 들어오는 버스도 읍내를 지나가면 책방 앞에서 내려도 되고, 문경새재로 가는 버스를 타면 읍내 터미널에 내려서 걸어야 했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마다 조금 긴장하게 되고, 멍하니 풍경을 보다가도 순간순간 어디인지 확인하게 됐다.



하루는  점촌에서 볼일을 보고,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갔더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표가 5분 느린 예전 시간표였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다음 버스까지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새댁이!”라고 부르시며 아랫집 할머님이 반갑게 인사하셨다.


12시 45분 차는 하루 한번 내가 사는 마을회관까지 들어가는 버스인데 그 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시내에 나와 병원에 가고, 볼일을 보시고 들어가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문경에서 몇 되지 않는 아는 사람을 시내에서 만나니 참 반가웠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화사하게 옷을 입고, 모자도 쓰시고,  사이좋게 계시는 모습이 왠지 귀여우셨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할머님은 “새댁이~”라고 부르시면서 저번에 해드린 캐러멜 호두를 어떻게 만드는지, 고춧가루는 어디서 가져다 먹는지 농사는 잘하는지 이런저런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다. 그리고는 마을회관에 도착하자 할아버지와 함께 사이좋게 내리셔서 집으로 가셨다.


할머님은 마을회관에서 내리지 않는 나를 보시고는 혹시 몰라서 못 내리는 줄 알고 몇 번이나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읍내에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야 알았다고 하시면서 할아버님과 함께 내리셨다.

* 사이좋게 내리시는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


그날 이후로 시골에서 버스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운전을 할 수 없고 저식들이 멀리 살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하루에 한 번 다니는 그 버스를 기다리고,  시간에 맞춰 나가고 들어와야 하는 일. 시골의 삶이란 그런 건가 보다.  그래서 버스엔 유난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타고 다니 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버스에서 우연히 알던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안부를 묻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버스에서 그간의 나누고 또 다음을 기약한다.


시골의 뚜벅이는 조금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이제는 버스가 조금 돌아가도, 천천히 멈추었다 서도, 조금 기다리고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시골 버스를 더 사랑하게 됐다.


* 버스가 지나다닐 수 없을 것만 같은 굴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