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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May 12. 2022

마당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있습니다.

배은망덕 한 애옹이


아랫집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들을 보시며 "아이고, 고양이들이 소복하게 있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애옹이가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 중에 한 마리가 또 새끼를 낳았고, 그렇게 대식구가 되었다..



문경에 내려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우거진 수풀과 함께 마당에 고양이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도 꽤 오래 비어있던 집의 마당은 그들의 집이었을 터, 우리가 이사 오게 되면서 마당을 떠나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보기에도 나이가 많지 않아 보이는 작은 체구의 고양이 한 마리가 유난히 배가 많이 나와있었다.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읍내 슈퍼에서 적당해 보이는 사료를 사다가 안 쓰는 그릇에 넣어 밥을 주기 시작했고, 그게 애 옹이 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길에서 어떤 삶은 살았는지, 집 안에서 밥 먹는 걸 쳐다 보기만 해도 도망치던 시절이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힐끔힐끔 주변을 경계하면서 먹느라 바빴다. 그래도 밥이 있다는 걸 알아서 하루에 한 번은 밥을 먹으러 왔다. 그렇게 한 달 즈음 지났을까, 한 이틀 보이지 않더니 배가 홀쭉해져서 돌아왔다. 마침 집에 사골국물이 있어 간을 안 한 국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한 그릇을 싹 비우더니 또 그렇게 사라졌다. 어디에 새끼를 낳았는지 궁금해서 주변을 살펴봤는데 얼마나 꽁꽁 숨겨 두었던지 보이지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삑삑거리는 새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우리 집 담벼락과, 앞집 담벼락 사이 틈에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다. 네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꼼지락 거리면서 삐약삐약 울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새끼 고양이들을 보러 가서 구경하고, 애옹이는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는지 밥을 먹고 나면 마당에 늘어져서 자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경계가 덜 풀어졌는지 새끼들을 이리저리 계속 옮기고 다녔다. 마당 옆 빈 화장실에서 나오기도 하고, 담벼락이나, 그 앞, 비어있는 옆집 마당의 수풀 여기저기로 새끼를 옮겨가며 이사를 다녔다.


그날 애옹이는 정말로 눈물을 흘렸다


 진짜 눈물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애옹이가 밥을 먹으러 와서 옆에 앉아 밥 먹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밥을 조금 먹더니 밥그릇에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리고는 돌아서서 ‘애옹-애옹’ 울면서 몇 걸음 가다 누워버렸다. 원래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 울음소리가 하도 처량하고 이상해서 애옹이를 따라갔고, 아랫집 할아버지 댁 옛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소리만 나고 새끼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새끼 고양이 4마리 중에 3마리가 푸세식 화장실 밑으로 떨어져 그 안에서 울고 있었고, 위에서 애옹이는 체념한 듯 울고 있었다.


화장실 앞에 앉아 울고 있었던 애옹이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아랫집 할아버지께 새끼 고양이가 빠졌는데 꺼내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물고기를 잡을 때 썼던 잠자리채를 가져와서 꺼냈다. 다행히 오래된 화장실은 바닥이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몸에서 나는 냄새를 제외하면 세 마리 모두 크게 다치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손을 타면 혹시 어미가 데려가지 않을까 싶어 만지지 않고 통으로 잘 옮겨 사랑채에 넣어두었더니 어느샌가 애옹이가 와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자 야옹이는 새끼 고양이들을 데리고 마당으로 왔다.



애옹이와 새끼 고양이들은 우리가 주는 밥을 먹었지만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밥을 먹었고, 우리가 마당에서 뭘 하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구경했다. 우리도 그 이상 침범하지 않았고, 고양이들도 편하게 쉬면서 놀면서 그렇게 마당에서 같이 지냈다.


호두 터는 거  구경하는 중


새끼들은 어릴 때부터 봐서인지 시간이 지나니까 가까이 오기도 하고, 다리에 와서 몸을 비비거나 만져주는 손길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애옹이는 절대 곁을 주지 않는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손을 무서워했고, 맛있는 걸 아무리 줘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기분이 나쁘면 무서운 소리를 내거나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발길질도 많이 했다. 그게 가끔은 무섭고, 배은망덕하고, 괘씸하다.



그렇지만, 우리도 거기 까지였다. 이미 밥을 주기 시작한 순간부터 애옹이의 인생에 개입하기 시작했지만, 집 안으로 들여 키우거나 할 수는 없었다. 마당에서 밥과 깨끗한 물을 주는 것, 비를 피할 곳을 나눠 쓰는 것, 혹시나 다치거나 상처가 나면 할 수 있는 정도의 조치를 취한다.


편하게 살던 빈 집을 빼앗은 미안함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애옹이는 애옹이의 삶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고양이는 제곱으로 늘어나 최대 9마리가 되었다가, 각자의 영영을 찾아 떠나 지금은 또 5마리 정도만 남아있다.)


동물도, 사람도 엄마는 피곤하다



* 지난 브런치 글

1. 문경으로 가자

2. 문경에서 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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