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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Apr 14. 2022

시골이란, 마당에 두릅나무쯤은 모두 있다.

봄이 되면 시작되는 채소 배틀


봄이 왔다. 나무 끝에서 연둣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그럼 텃밭에도 나물이며 먹을 것들이 자라난다. 마당에도 언제 봉오리가 생겼나 싶게 며칠 만에 두릅이 쑥- 하고 올라왔다. 이웃과 계절을 나누고 싶어 내가 먹을 것을 남겨두고 챙겨 나선다.


봄이 되면 시골에선 채소 배틀이 시작된다.  이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상대에게 내가 나누어 주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보고 없으면 나누어 주면 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시골의 여느 마당에는 웬만한 것들이 모두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이겨 내가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상당한 눈치와, 타이밍, 그리고 운도 맞아야 한다.


며칠 전의 일이다. 벚꽃이 예뻐 길에서 남편과 사진을 찍다가 남편의 사촌 형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저희 두릅 있는데 곧 따야 할 것 같아요 좀 드릴까요?”라고 조심히 배틀을 신청했고, “아, 저희 사과밭에 두릅 엄청 많이 있어요. 제수 씨 좀 가져가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패배했다. 아, 역시 어른들은 쉽지 않다.


우선은  채소 배틀은  젊은이들 과의 거래  성사될 확률이 높다. 보통 텃밭이 없는 경우가 많고, 텃밭이 있어도 젊은이들은 아주 간단하고 기초적인 채소만 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 또한 아직 관리가 미숙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물어봤을  대부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채소, 나물, 과일  폭넓게 나눠주기가 수월하다. 그럼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읍내에 자취를 하거나 숙소에서 생활하는 또래의 청년들이 있었다. 여름이 되어 텃밭에서 나는 상추며 가지, 고추 같은 것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 자라나면 슬슬 준비를 한다.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나 혼자 채소 배틀을 시작하는데 당연히 이 게임은 대부분 승리한다. 승리했다는 기쁨에 싱싱한 채소들을 봉투에 가득 담아 가져다주고는 했다.


어른들과의 거래 시 불발될 확률이 높으며, 또 부모님과 함께 거주 중인 젊은이의 경우, 혹은 농사를 짓는 전업 농부의 경우도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 어른들은 경험이 많아 텃밭에 아주 다양한 종류의 채소를 시기에 맞추어 심으신다. 그리고 관리도 아주 잘 돼있어 상태도 아주 좋다. 또 나 같은 초보 시골꾼들은 알려줘도 풀인지 뭔지 모르는 것들도 귀신같이 찾아내서 ‘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신다. 이 사람들은 종류와 품질에서 벌써 우위에 있다. 심지어 규모에서 밀려 오히려 있는 것도 얻어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제일 나눠주기 어려운  있는데 그건 ‘사과. 문경에 와서 사과나무가 이렇게 많이 있는  처음 봤다. 그래서 직접농사를 짓거나 아는 집이 농사를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사과도 흔해서 상대가 어린이 라도 쉽지 않다. 사과를 나눠주기 전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혹시 집안이나 지인 중에 사과 농사짓는  계세요?”라는 질문을 필수로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답변은 “ 돌아온다. 그럼 쑥스럽게 웃으며 “,  계시면 사과  나눠 드리려고 했어요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사과는 외지인들 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있다.


정말 배틀같이 될 때가 가끔 있는데, 비슷한 수준의 사람을 만날 때다. 내가 있는 걸 모두 가진 사람.

“상추 있어요? 쪽파는? 가지도? 고추는?” 모두 있다. 그러면 뭔가 오기가 생겨 더 나눠주고 싶은데 내 텃밭에 있는 것들도 그게 전부라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없다. 그래서 우리 집 텃밭에 뭐가 더 없는지 아무리 생각해보지만 있을 리가 없다. 그럼 뭔가 마음이 아쉽다.


물론 상대방의 나눔도 언제나 환영이다. 나에게 없는 것이라면 선뜻 기분 좋게 받아 올 수 있다. 아랫집 할머니께서는 직접 심으신 당근이며 콩이며 여러 가지를 나눠주셨다. 쪽파 씨를 주시기도 하고, 직접 기른 옥수수로 만든 뻥튀기를 주시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모종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하늘 마’ 같은 처음 보는 것들도 집에서 기른 거라며 나누어 받았다. 또 같은 상추라도 종류가 다를 때에는 서로 맞바꾸어 먹기도 했다.


 명백한 패배인 경우가 있다. 이미 나에게 있는  받아올 때다. 작년이었다. 아랫집 할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새댁이 집에   우리 집에 들러. 가지가 많아 가지  가져가~”라고 하셨는데 사실 우리  에도 가지가 넘쳐나고 있었다. 집에도 많이 있다고 대답했지만   들리셨는지 가져가라는 말을 계속하시는데 거절하기가 그래서 결국 집에 가는 길에 들러 가지를  봉지  받아왔다. 가지가 한창 나는 시기라 다시 나눠줄 사람이 없었다.    가지를 처치하기 위해 말린 뒤 볶아서 반찬으로 만들어 다시 할머님께 가져다 드리고, 주변에도 나눠주었다.


점점 나눠주는데도 요령이 생긴다.




며칠 전 텃밭을 갈고 고랑을 만들어 비닐을 씌웠다. 조만간 이것저것 모종을 사다 심을 예정이다. 올해 다양한 채소 나눔 배틀에서 승리하기 위해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무얼 심을지 고민하고 있다. 올해는 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게 뭐라고 조금 신이 난다.


• 채소 배틀에서 패배했다. 가지가 넘쳐난다.


• 상추가 너무 많아 나누기도, 바꾸어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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