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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비추는 빛

베니스 Punda della dogana Museum

by 김보아
“나는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빛이 스며드는 틈을 설계한다” -안도 다다오



수년만에 다시 찾은 베니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로들은 여기가 바로 베니스임을 실감하게 한다. 숙소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골목골목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수많은 수로를 건너야만 하고 수로를 가로지르는 계단식의 구름다리 위로 무거운 트렁크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도착하여 창문을 여니 골목 골목 작은 물길이 지나고 있었고 외부에서 들리는 뱃사공의 노랫소리는 어느새 집안 가득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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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이어진 수로와 다리들 ©boah



나는 짐을 풀고 지난번 여행에서 놓쳤던 푼다 델라 도가나 미술관 Punda della Dogana Museum으로 향했다. 이 미술관은 17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주세페 베노니(Giuseppe Benoni)가 설계한 옛 세관건물을 2009년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현대 미술관으로 개조한 프로젝트이다. 안도 다다오가 추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조우는 과거의 건축물의 보존과 현대적 활용방식을 통해 형상화되었다. 옛 것을 고정적으로 보전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흔적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개조해 나가고자 하는 것은 이탈리아 건축 전반에서 보이는 가치이다.

안도 다다오는 기존의 구조인 석조 벽, 목조 트러스 지붕, 작은 창들을 보존하여 건축물의 역사적 정체성과 서사를 후대에 전달하고 콘크리트 요소의 삽입, 빛을 조율하는 장치로서의 지붕을 변형하여 과거의 시간성과 물성을 유지하면서도 미술관이라는 용도에 맞게 공간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삶의 문화를 담아내었다.



스카이라이트와 측면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

안도 다다오는 이곳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면서 스카이라이트와 측면 창을 통해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유입하도록 설계했다. 스카이라이트는 기존 목조 트러스 안쪽에 길게 삽입되어, 직접광보다는 확산된 빛이 실내에 고르게 스며들게 하여 눈부시지 않고 골조의 형태를 강조하였다.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자연광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인공조명 시스템이 함께 고려되어 있었다. 자연과 인공, 그 경계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계획이 섬세했다.


실제로 각종 매체에서 제공하는 사진과 내가 방문했을 때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자연광으로 공간의 빛을 조율하는 경우와 자연광을 제어했을 경우의 공간감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자연광의 활용을 건축물을 개조하는데 핵심이 되는 요소로 사용하고 공간의 중심에 콘크리트 큐브를 사용하여 기존의 마감재인 벽돌과 질감의 차이를 만들어 내면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면서 공존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잘 들어내었다. 이 공간에 새롭게 부여된 자연의 빛은 현재의 빛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빛이고 과거의 모습을 비추는 동시에 현재를 비추는 역할을 한다.


erco.com , archdaily, archtonic에 게재된, 미술관의 자연광이 내리는 중앙 콘크리트 큐브 사진



자연광을 인공적으로 제어한 큰크리트 큐브 공간(위 두개 사진), 측면 대형창으로 유입되는 자연광(아래 두개 사진) ©boah


과거의 흔적인 천정 목조 트러스 구조와 오래된 벽돌이 새롭게 만들어진 콘크리트 큐브와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빛에 맞닿아 있다. ©boah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개조해 가면서 유연하게 공간을 변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건축물은 다양한 시대의 층위가 공존하는 가치를 만들어 낸다. 창조하는 인간은 남겨진 과거의 기억 위에 오늘의 해석을 덧붙여 미래를 향한 단단한 시간과 기억의 장면들을 만들어 간다. 니체는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고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기도 하다. 남겨져 있는 과거의 기억은 그 존재를 지탱했던 뿌리이다. 시간은 그것에 수많은 흔적을 내면서 변화를 일으켰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에 대한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그 변화는 안도의 말처럼 과거와 현재 사이에 단절의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이라는 '빛'이 스며들 '틈'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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