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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pr 01. 2024

네 마음 내 마음이 달랐던 스테이크

협력의 즐거움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처방하는 보드게임 - 그릴홀릭 

우리 부부는 결혼 기념일이면 대부분 여행을 다녔다. 

당일치기도 가고 짧게는 1박, 길게는 3주를 다니기도 했는데,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내 생애 첫 유럽 자유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리고 해서 2년 뒤에 12주년 기념여행으로 유럽을 가기로 했다. 물론 두 부부만의 여행이다. 아이들은 시부모님께서 방학을 이용하여 봐주시기로 했고, 아이들도 다녀오라고 허락?을 줘서 성사된 내 생애 가장 긴 유럽 여행.


체코 - 오스트리아 - 스위스 - 이탈리아의 코스로 3주간의 자유여행인데, 뚜벅이 여행이라 하루 종일 걷는게 일상이였고 각종 교통수단을 다 탔던 여행이었다. 여행의 막바지인 이탈리아에서의 일주일은 체력이 거의 고갈되어서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흥이 나질 않고 피곤하기만 했다. 그런데 남편이 피렌체에서는 두오모 성당의 그 많은 계단을 올라 기어코 옥상에서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 봐야한다고 강력히 주장을 했다(힘들어도 나도 동의를 했다. 그래. 피렌체에서 두오모 성당은 올라가 봐야지)


온 몸에 있는 체력을 끌어올려!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두오모 성당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옆의 조토의 종탑에도 올라가야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곳에서 두오모 성당을 바라보는 뷰를 봐야 한다는 남편의 강력한 의견 때문에 체력이 바닥난 상태이지만 헛구역질을 해가며 똑같은 수많은 계단을 올라갔다(진심으로  싸울 뻔 했다. 그럼에도 올라간 것은 여기를 언제 또 올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려오는 관광객들이 힘내라고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한 껏 받으며 올라간 옥상에서 아름다운 두오모 성당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자유여행을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유로움을 찾기 위해서 중간에 쉬고 느슨하게 관광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자유여행이 아니었던가. 투어보다 더 빡센 남편표 자유여행!


이때쯤에는 딱 이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정신은 황홀한데(미술관 투어를 좋아해서 대작가들의 그림과 조각품을 감상하는 것이 너무 황홀했다) 몸은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 영혼만 돌아다니는 느낌이였다.

몸이 너무 힘들 때 여러분은 어떤 상태가 되는지 궁금하다. 나는 식욕이 없어진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만 들 뿐이다. 그런데 또 남편이 피렌체에서는 T-bone 스테이크를 꼭 먹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게 그렇게 유명한지를 몰랐다. 알았다면 먹었을텐데…) 그런데 가격이 꽤 비싸서 좀 놀랬다. 맛있게 먹을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꼭 먹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여행의 말미인지라 돈도 부족하고 해서 다른 것을 먹자고 했더니 남편이 꽤 실망한 눈치였다. 여러번 나를 설득했으나 나는 비싸다는 이유로 좀 더 저렴한 파스타를 선택했다.

TV에서 이탈리아 여행에 하면 자주 나오는  T-bone 스테이크 먹방을 보면서 

“우린 저걸 안 먹고 왔지!” 하면서 매번 빠지지 않고 언급한다(긴 여행을 다녀오고 후회되는 포인트 두가지! 체력을 키우지 않은 것, 너무 아끼려고 하고 외국이라고 너무 겁을 먹은 것) 

“여보 미안 다음에 가면 꼭 한 번은 먹자!” 다음은 과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쉬운 마음에 꺼내들고 오는 ‘그릴홀릭’ 게임.



보드게임 페스타에서 구매한 그 당시 핫했던 올린 스튜디오 정석현 개인작가님의 ‘그릴홀릭’이라는 게임.

유명한 레스토랑의 쉐프가 되어서 타지 않고 주문서대로 스테이크를 잘 만들어 내야하는 협력게임이다. 게임플레이어들이 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협력게임은 좀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의견들이 많으나 그릴홀릭은 나름대로 아슬아슬한 요소를 넣어놔서 그런지 우려했던 것 보다는 훨씬 즐겁고 웃음이 오가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메인메뉴가 립 아이, 티 본, 스트립, 필렛 미뇽 이렇게 네가지 메뉴가 있는데, 야채와 곁들여서 타지 않게 또한 손님들이 원하는 굽기에 맞게  시간안에 잘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 게임은 전용매트가 있는데 매트가 있어야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얼마전 보드게임 모임에 이 게임을 가지고 갔는데 티본스테이크 그림을 볼 때마다 피렌체의 추억이 떠올라서 혼자 웃게 된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고기 말고 야채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채색위주의 식사를 즐거워 하고 있다. 피렌체에서 과연 티본스테이크를 다시 먹을 수나 있을런지…


그릴홀릭은 박스가 아주 콤팩트하다. 매트는 별도로 판매하고 있으며, 전용매트가 있어야 게임의 즐거움이 더해지므로 매트가 있으면 금상첨화. 들어온 주문을 타지 않게 만들려고 하니 주방은 이런 저런 얘기로 분주하다. 이 재료가 없다. 저 재료가 필요한데... 이러다 타겠어!! 우리의 목표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같이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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