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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r 28. 2024

끝에서 끝까지 너와 나의 거리

새를 직접 키울 수 없는 새 덕후들에게 처방해 주는 보드게임 - 윙스팬

문경에 여행 갔을 때가 생각난다. 산 중턱에 한옥 숙소에 묵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차 소리나 공사소리 대신에 알 수 없는 새들의 소리로 아침을 시작했다.

새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여행을 가면 새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새들은 예민한 것 같다. 사람의 발소리만 들어도  후두득 날아가 버려서 그 생김새를 관찰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새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다. 그러나 생명을 키우는 것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유튜브에서 주로 보는 채널이 강아지나 동물, 아기가 나오는 채널이다(내가 직접 키울 수 없는 생명들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미 다 커버린 고등학생들이다).

그중에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앵무새 사 남매 - 루몽다로>라는 채널이 있다. 구독자가 22만 명이나 되는 유명 채널이다. 개성이 각자 다른 4 마리의 앵무새들이 나온다. 그중에 ‘루이’라는 새가 이 채널을 구독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

‘루이’는 평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아무 말 대잔치를 펼치기도 하고 적절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른다면 믿으실지 모르겠다.

전화를 걸고 받는 상황극도 사람이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네, 집사님, 네, 감사합니다. ”

“아멘, 예수님 찬양! 낫게 해 주세요!”

“네, 어머님, 아항항항하하핫하하핫!(숨넘어가는 웃음소리)“

“떡볶이나 먹을까?”

“지겨버(지겨워)“

“잘 해구와(식구들 나갈 때 현관에서 하는 말)


이 말들이 다 ‘루이’라는 새가 하는 말이다.

나는 어느덧 앵무새의 랜선이모가 되어 있었다. 아이돌 덕질도 아닌 앵무새 덕질이라니

우리 집 새는 아니지만 온라인으로 찾아오는 이 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새를 관찰하기 좋아하고 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나처럼 새를 직접 키울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이 게임을 꼭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2019년 출시된 ‘윙스팬’이다.


윙스팬의 뜻은 새의 날개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게임을 살펴보면 카드 한 장 한 장이 조류 도감과도 비슷할 정도로

새의 종류 새의 둥지 모양, 알의 개수, 먹이, 윙스팬 사이즈 등이 카드 한 장에 담겨있다.

새 카드만 보고 있어도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다. 정보뿐만 아니라 새 그림을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자,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자. 게임은 비교적 간단하다. 새를 놓고, 먹이를 얻고, 알을 낳고, 새 카드를 다시 뽑고 하는 과정들의 반복 속에서 새들의 능력을 통해서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가 팡팡 터지는 엔진빌딩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부분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새 카드 위에 알을 올려놓는 행위이다.

알의 색깔이 다양하고 이 새는 이런 색의 알을 낳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놓을 때 스스로 게임을 창조해 간다는 느낌마저 든다.


두 번째는 새 카드 밑에 다른 새 카드가 깔리는 부분이다. 카드에 기능들이 있는데, 카드를 기존 카드 밑에 넣어라고 하는 지시가 있다. 새 떼를 이루는 새들은 점점 더 밑에 깔리고 게임 종료 후 장당 1점을 얻게 된다.  다른 새를 사냥하는 종류의 새들도 있는데 이 때는 새떼를 이루는 느낌이 아닌 새를 사냥했다고 표현을 한다.

새들의 특성을 잘 살리고 게임의 묘미도 살리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뒤쳐지는 플레이어를 챙기다는 점이다. 점수가 가장 낮은 사람에게 카드 한 장을 가져가게 한다거나, 새 먹이를 가져가게 하는 요소들이 여러 번 있다. 추격의 여지를 놓지 않게 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게임 막바지에 들어서니 새 떼를 꽤 많이 형성하고 있던 멤버가 생겼다. 그분의 독주라고 생각했는데 게임이 끝나고 이런저런 보너스 점수를 합산하니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밸런스가 꽤 좋았다!

보드게임 모임 멤버분 중에 새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분이 계신데 그림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신 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 그분이랑은 이 게임을 평생 할 수 없구나 생각했다.

세밀화라서 좋았는데 세밀화라서 누군가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여운 새 그림이라면 가능할까?


뒤처지는 사람들을 챙기는 게임의 친절함? 때문에 딱히 쓸모가 없는 새 카드만 자꾸 늘어난다. 사실 필요 없다고 외치는 우리 멤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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