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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리 Jul 25. 2023

알레르기: 액땜인가

2013.05.22

케냐로 출발하는 날 새벽, 그간의 과도한 예방접종과 무리한 알바로 인해 전신에 두드러기가 났다. 입술이 부어오르길래 홀로 택시 타고 새벽 3시 세브란스 응급실 방문. 조용한 응급실에서 스테로이드 링거를 맞던 그 공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왠지 모르게 서늘하고, 작은 부스럭거림도 공명하던 그 공기.


고요한 응급실에서 잠시 눈을 붙인 후 큰 트렁크 하나, 기내용 트렁크 하나를 질질 끌고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홀로 KTX로 경주-서울-인천공항도 사뿐히 이동. 배웅을 나온 사람은 당연히 없다. 오랜 해외생활의 부작용이 이런 겁니다. 아프리카 가는 막내가 마치 경주에서 대구 가는 것처럼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심지어 작은 오빠는 일주일 뒤에 카톡으로, '어? 니 벌써 갔나?'이러고 있다. 사랑이 넘치는 우리 가족.


인천에서 나이로비까지 대한항공 직항이 있던 호시절. 승객보다 승무원이 더 많은 역사적인 비행이었다.  도착하니 지부장님과 동료분이 마중 나와 있었다. 가족보다 낫구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나이로비에서 다시 두드러기 발발, 나이로비 병원 응급실도 입성. 24시간 만에 양국 응급실을 방문하며 액땜을 하는구나. 아니야, 그걸로 끝날 리가 없지. 나이로비에서 차로 7시간 떨어진 카바넷으로 가는 마타투가 교통사고까지 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제대로 된 액땜이지.'


액땜이었을까? 앞으로 벌어질 온갖 일들의 전초전이었을까? 온갖 사건에도 그저 무덤덤했던 혈기왕성한 이십 대는 시원한 생강맛이 나는 탄산음료에 감탄할 뿐이었다.


마타투: 케냐에서 대중교통으로 쓰이는 버스 혹은 봉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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