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
매우 단순했다.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어디든 좋다,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한다면. 뒤지고 또 뒤지다 찾아낸 케냐의 어린이 도서관 건축 공고. 운명이다. 그쪽도 나를 운명이라 생각했나 보다. 당장 면접 보러 오란다.
-저기, 저는 지금 파리에 있는데요, 프랑스.
그 이후는 속전속결. 9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공항 도착. 공항 리무진으로 6시간 동안 경주로 달려 밤 9시 도착. 새벽 3시까지 가족들과 와인으로 회포를 품. 프랑스에서 사 온 와인을 빌미로 언니한테 빌었다. 나 허리가 너무 아파. KTX 좀 끊어줘. 아침 7시에 서울 도착. 광화문 역 사물함에 트렁크 넣어놓고 미친 듯이 뛰어가서 면접. 나의 똘끼를 알아주신 그쪽의 간택으로, 그다음 날 뽑혔다고 연락이 옴. 2박 3일간 지구를 반바퀴 돌고 한반도를 왕복하여 본 면접이 이 이야기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순탄할 리 없지, 내 인생이. 도서관 건축을 하는 걸로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나에게 던진 대리님의 낭창한 한마디.
-어? 누가 그래요? 보배 간사님은 가축사업인데요?
-저 소는 먹기만 하지 관심도 없어요. 소 사업하기 싫어요! 저는 건축전공인데 원터치 축사 지을 것도 아니고.
-명목만 그렇지 다 같이 하시게 될 거예요.
결국 낚였다.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순진한 면이 있었나 보다. 아 몰라, 가자. 어떻게든 되겠지.
낭창하다: ‘성격 따위가 밝고 명랑하여 구김살이 없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