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이 조선시대에 인기를 얻은 이유
고전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완벽하다. 외모와 실력뿐 아니라 인성까지 겸비했다. 뛰어난 자질을 많이 갖추면 주변의 질투나 고난은 늘 많은 법이다. 주인공들은 본인의 뛰어난 자질로 인해 주변의 질투를 받거나, 전생 혹은 천상계에서 지은 벌로 인해 인간계에 하강하여 갖은 고난을 겪는다.
그럼에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천우신조로 인한 온 세상의 도움 혹은 우연적 행운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탁월한 인성이 인간을 감동시키고, 온 세상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고전소설 주인공의 비범한 인성적 자질은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단연 효심이 으뜸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심청전」이다. 효행으로 유명한 인물인 심청은 부처님의 영험함으로 장님인 아버지가 눈이 뜨이기를 바라며 공양미 삼백 석을 절에 시주하고, 희생양이 되어 바다인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현대 독자의 입장에서 이런 심청의 효행은 쉽게 공감하기 어렵고, 또 여러 의문점이 생긴다. 부모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과연 진정한 효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이를 당시의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보았을지에 의문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죽음을 각오한 주인공의 효행을 이해하고, 호응했던 것일까.
실제 심청전은 이본만 해도 200편을 웃돈다. 이는 작품 속 비범한 효행이 당대의 독자들에게는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는 증거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당대와 현대의 온도차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이 생각하는 효란 과연 무엇일까.
옛 사람들이 생각한 ‘효’의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불과 이백여 년 전 조선시대에 있어서 효는 지고의 가치이자, 공동체를 지탱하는 핵심 윤리였다. 유교 사회에서는 효의 지속적 강조가 가족, 촌락 공동체와 국가 풍속의 안정적 유지를 담당하는 안전판의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어졌다.
따라서 조선왕조는 끊임없이 효를 강조했으며, 효자를 발굴하여 표창하고 기념탑이나 기념문을 세워 주거나 부역을 면제해주고 벼슬을 주는 등 폭넓은 혜택을 주었다. 따라서 고소설 속 인물의 효행 실현 양상은 현실적 이유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될 만했을 것이라 본다.
조선시대에 효는 인간이라면 평생 실현해야 할 것으로서, 자기수양 즉 수신(修身)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효경(孝經)>에서는 제후가 효도하는 길이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처신하여 사직을 지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중용(中庸)> 또한 다스리는 자로서 몸을 닦는 일이 중요하며, 그 제일의 방도로서 어버이를 섬기는 일을 거론한다.
인과관계의 순서가 바뀔 뿐 수신(修身)과 효, 다스림의 길이 같다고 보았다.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여 어그러짐이 없도록 하는 것은 직분을 가진 모든 이에게 해당된다. 부모에 대한 물질적 봉양이나 안위만을 챙기는 것이 다가 아님을 말한다.
공자는 효행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와 연결되며, 같은 비중을 가진다고 언급했다. 맹자 또한 “사람마다 자기 어버이를 어버이로 모시고 자기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면 천하가 다스려진다.”고 하여, 효의 실현이 천하의 이로움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말했다. 여러 유학서에서도 집안에서의 효행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 행위가 됨을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효는 본성의 실현이면서 수신을 위한 구심점으로 유학 경전에서 끊임없이 강조된다. 효를 강조하여 사적 영역에서부터 인간에 대한 실천을 유도하고, 이 마음을 확장하여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분위기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이는 최종적으로 이상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도의 일환인 것이다.
조선후기에 탄생하여 널리 읽혔던 고전소설 또한 이와 같은 효의 이상적 의미와, 공동체 질서 구현으로까지 연결되는 효의 확장적 의미를 수용하여 형상화하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효는 인물의 내면과 도덕성을 판단하는 조건에서 국가 경륜의 자격 조건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짐작해 보면 작품 속 인물의 효행은 이를 향유했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세상에 대한 기대와 관련될 것이며, 효행의 과정과 작품 결말 또한 그와 관련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 이야기에 열광했던 독자들은 고생한 인물들이 보상받는 것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황후가 되는 심청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지도자나 정치를 꿈꾸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부모가 자식을 지극히 여기는 마음은 의식적 행동이라기보다 타고난 본능의 영역에 더 가깝다. 실제로 미 하버드대에서 수행하여 2018년에 발표된 동물 실험 결과에서, 쥐의 부모 행동이 뇌 시상하부의 전시각중추(medial preoptic area)의 ‘갈라닌(galanin)’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신경세포가 부모 행동과 관련돼 있음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갈라닌 발현 세포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자 젊은 쥐도 마치 아빠 쥐처럼 공격성이 줄어들고 새끼를 보듬는 행동을 보였다. 암컷 쥐의 경우도 수컷 쥐와 같은 뇌 부위가 부모 행동을 유도함을 확인했다.
이와 같이 부모의 자식 사랑은 어느 정도 생물학적 본성과 연결돼 있지만, 자식의 부모 사랑은 그렇지가 않다. 부모에 대한, 사랑을 준 상대에 대해 보답하는 행동이란 본능이라기보다 이성의 영역에 더 가까울 것이다. 본인이 받았던 사랑을 다시 되새기고, 자식을 키울 때 겪었을 부모의 심각한 고충을 상상하고 공감하며 헤아릴 수 있는 복잡한 사고와 감성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권이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기본적인 효행을 실천할 수 있겠지만, 진심어린 효행이란 이와 같이 이성과 감성이 모두 동반되는 종합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이 인정할만한 효행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전인적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학에서의 효(孝)는 단순한 인간의 완성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인물이야말로 이러한 마음을 확장해서 공동체의 진정한 화합을 도모하고, 공동체의 소외된 구성원들까지 보듬고 챙기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하 맹인을 모두 모아 잔치를 하옵소서. 저이들이 천지 일월성신이며 흑백과 장단과 부모 처자를 보아도 보지 못하여 원한 둠을 풀어 주옵소서. … 신첩의 원일 뿐 아니오라 또한 국가의 화평한 일도 되올 듯하옵니다.
심청의 말이다. 그녀가 지닌 효심은 아비와 비슷한 처지인 나라 안의 다른 맹인들에게도 확장된다. 자기 부모의 안녕만을 염려하는 단순한 효심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가진 효심의 확장은 결국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지도자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 까닭에 고소설 독자들이 이들의 비범한 효심에 호응하고, 응원을 보낸 것이라 본다.
현대 독자들에게 무턱대고 이런 심청을 본받으라 할 수는 없다. 그들처럼 비범하지 않아도, 고귀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이러한 인물들의 효행을 작품 전체를 통해 살펴본 후, 효(孝)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현대 독자들에게 폭넓게 주어졌으면 한다.
부모이건 스승이건 친구이건, 주변의 누군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희생이 담긴 것인지를 상상하여 공감할 줄 알고, 감사와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질 줄 알며, 이러한 마음을 본받아 이를 다른 이에게 실천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울 수 있다.
심청의 이러한 마음을 담아낸 고전소설은 그와 같은 측면에서 공동체의 귀중한 유산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고전소설 작품을 통해 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단순히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외침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더 멀리 퍼질 것이라 믿는다.
+다음 글에서는 심청의 극단적인 효행 저변에 깔린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맥락에 대해 추가적으로 써보겠습니다.
*본 글은 제가 발표한 논문인 ‘「고소설의 효행인물 형상화와 독자기대의 실현 –「창선감의록」, 「심청전」을 중심으로-」, 남명학연구 67집, 경상국립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2020, pp.93~134.’의 일부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