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령으로 돌아온 설공찬, 그는 왜?

조선 최초 빙의소설 <설공찬전>

by bbj

‘빙의’는 영혼이 산 사람에게 옮겨 붙는 것으로, 요즘 시대에도 으스스한 냡량특집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종종 등장한다. 한국 옛 소설 중에도 이런 빙의를 소재로 한 소설이 하나 있다. 옛 시대에는 흔치 않은 소재였다. 창작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조정에서는 이를 금서로 지정했다.

조선 세종~중종 대의 채수(1449~1515)가 지은 소설 「설공찬전」이다. 실록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실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가 1997년 전체 작품의 2/3 가량이 적힌 소설이 한글로 발견됐다.


당시 문자를 알거나 소설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희귀했고, 독자층도 전체 인구에서 매우 협소했다. 그런데 한문으로 지어진 소설이 한글로 번역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사헌부에서 유통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작자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무엇이 불편해서 윗사람들은 금서로 규정하고, 작가를 죽여야 한다고 했을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순창에 살던 설충란이라는 남자에게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두 자녀가 병들어 차례로 요절했다. 어느 날, 설충란의 동생 설충수의 아들 공침이 뒷간에 갔다오더니 갑자기 이상해졌다. 알고 보니 설충란의 딸이 혼령이 되어 공침 몸에 들어간 것이다. 사촌 누나의 혼령에 씌어 아들이 힘들어하자, 설충수가 주술사를 부르고, 그 혼령은 화가 나서 남동생을 데려오겠다며 물러간다. 곧, 설공찬 혼령이 공침에게 들어가 왕래하기 시작한다. 설충수가 다시 주술사를 부르자 공찬은 공침의 몸을 극도로 괴롭힌다. 구체적인 작품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고운 계집이 공중에서 내려와 춤추는 것이었다. … 이윽고 충수의 집에서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물어보니, 공침이 뒷간에 갔다가 병을 얻어 땅에 엎드려 있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렸지만 기운이 미쳐버리고 다른 사람과 다르더라고 하였다.
2. 그 넋이 밥을 하루 세 번씩 먹되 다 왼손으로 먹거늘 충수가 이르기를, “네가 전에 왔을 때는 오른손으로 먹더니 어찌 왼손으로 먹는가?” 하니, 공찬이 이르기를, “저승에서는 다 왼손으로 먹느니라.”라고 대답하였다.
3. “이렇듯이 나를 때리시면 숙부님의 얼굴을 변화시키겠습니다.” 하고 공침의 사지를 비틀고 공침의 사지를 비틀고 눈을 빼니 눈자위가 찢어지고 또 혀도 파서 베어내니, 코 위에 오르며 귀 뒤로 나갔더니, … 두려워 넋을 잃어 다시 공찬이를 향하여 빌기를, “석산이를 놓아 보내고 부르지 않으마.” 하고 많이 비니, 한참 만에야 얼굴이 본래 모습으로 되었다.


워낙 고어에 속하기 때문에 몇몇 부분에서 해석이 매끄럽지 않다. 1은 공침이 뒷간에 갔다가 빙의가 진행된 장면이다. 2는 공찬이 넋이 공침에 깃들어 밥을 먹을 때 왼손으로 먹고 이유를 물으니 저승에서는 다 그런다는 넋의 말이다. 3은 충수가 여러 차례 주술사를 불러 구마(驅魔)를 시도하자 거슬린 공찬의 혼령이 공침의 사지를 비틀고 얼굴을 변형시켜 보복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혼령이 실세계의 사람에게 깃든다는 설정과 사람의 몸을 빌어 말을 하고 실세계의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장면들은 사실적이면서도 공포감을 준다.


공침의 몸에 들어간 공찬 혼령은 사촌동생들을 불러오게 하는데 이들이 저승이 어떤 곳인지를 묻자 말해준다. 저승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승에서의 삶의 선악에 따라 귀하고 천함이 결정되는 공간이다. 둘째, 여성이라도 실력이 있으면 능력에 따라 관직에 오를 수 있다. 셋째, 충신과 반역자의 구별이 명확하며 반역자는 지옥에 간다. 저승은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며, 여기서 이승의 삶을 평가받아 다시 가장 안 좋은 ‘지옥’에 가기도 하는, 한마디로 이승과 지옥의 중간적 세계라 할 수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는데, 적어도 「설공찬전」에서는 아닌 것 같다. 신분도 남녀차별도 없이, 노력에 따라 대우받고 행한 일의 선악에 따라 정당한 평가를 받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많은 백성들이 그렇게 열광했던 것일까. 또 그래서 지배층은 거슬렸던 것일까.


설공찬 혼령이 왜 찾아왔는지, 그것도 죄 없는 사촌동생을 왜 괴롭혔는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이상적인 세상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음을 말하며, 불의한 현실에 쉽게 눈감고 체념하는 이승의 인간들을 강하게 깨우려고 찾아온 것은 아닐까.

유토피아(Utopia)는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단어를 결합하여 창안한 단어이며, 모두가 바라지만 지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사회를 뜻한다. ‘저승’은 그런 의미에서, 특히 신분과 남녀 차별이 엄연한 시대 속 독자들의 입장에서‘존재할 수 없고 꿈꿀 수도 없는’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묘사된 상상 속 허구를 통해, 당시 조선시대 독자들이 강하게 열망한 세상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문학이 창안해 낸 해방 공간에서 독자들은 금서로 지정된 이 책을 치열하게 읽으며, ‘없는 장소’가 언젠가 ‘있는 장소’가 되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불온하되 영원히 불온하지 않은 상상 말이다.


-이미지: 권동현의 만화 <설공찬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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