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퇴사 꿈나무가 되었을까
“저 퇴사하겠습니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걸렸던 시간은 정확히 4년하고도 4개월... 나는 그곳에서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대학 졸업 후, 꿈꾸던 직장은 아니었지만 운 좋게 취업해 중견기업의 엔지니어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엔지니어로서 역량도 키웠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기에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잘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가을 무렵 나는 그곳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것 같아서...
아침 8시 30분 출근
저녁 7시 30분 퇴근
그 퇴근 시간마저도 눈치를 봐야했던 분위기, 황금같은 주말에도 고객사 대응을 위해 출근하는 날이 잦았던 그곳에서의 시간...
나의 젊음을, 나의 하루의 대부분을 그 회사에서 보내는 것이 점점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쳇바퀴 속에서 사는 삶에 이대로 익숙해진다면 정말로 내 인생의 전부가 그 회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 생각의 끝에 도달했을때 이윽고 결심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겠다.
물론 퇴사를 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나이 먹어서 취업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잉여 인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님의 우려 가득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고, 이미 그 회사가 자신의 인생 전부가 되어버린 그들이 쏟아내는 그저 그런 레퍼토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뭐 할건데?”
“공부? 그건 회사 다니면서도 할 수 있잖아.”
“지금 그만두면 너 백퍼 후회한다”
ㅎㅎ 개소리들 하지 마시라...
그런 소리에 휘둘릴 내가 아니었다. 이미 굳건하게 다짐을 했던터라 개의치 않았다. 그들을 굳이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거기에서 써야하는 내 시간들이 아까울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서른 즈음의 나는 백수가 되었다.
운이 좋았을까, 아니면 내가 열심히 했던 탓일까
다행히 백수가 된지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내 인생 최대 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발전공기업 입사’라는 성취를 거머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더이상 얻을게 없을거라 생각했다. 큰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정년을 보장해주는 안정적인 직장,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하는 공기업이라는 타이틀..
나는 이 두 가지 울타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가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조금 더 여유있고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고 걷기 시작한 이 길이 사실은 이전과 다름없는 가로등이 꺼진 어두컴컴한 길이었다는 것을...
내가 좇고 있었던 어느 한 곳에서도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한채 그저 그런 삶을 하루하루 견디고 있는 나를 마주한 순간,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이상하리만큼 그들의 세상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 적절한 워라밸속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 그런 삶을 사는 그들 속에서 나는 그저 사회부적응자일 뿐이었다.
나를 잃지 않으려 떠났던 첫 직장을 뒤로 하고, 도착한 지금의 삶이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직장이 내 전부가 되는 삶’이 되는게 아닐까 무서워졌다.
과감하게 퇴사하고 본인의 삶을 스스로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부러웠다. 그들에 비해 나는 현재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역시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현재의 삶을 과감히 버리지 못한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는 일, 그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언급하고 있는 공부는 바로 전문직에 도전하기 위한 공부이다. 온전히 공부에 모든 것을 바쳐도 따기 어렵다는 그 전문직... 나는 그걸 직장인의 신분으로 과감히 도전해보기로 했다.
새 출발을 위해 모든 것을 갈아넣겠다는 이 다짐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도 모른다.
지금의 삶에 비해 더 척박하고, 막막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이 돌아온 이 길을 다시금 돌아서 걷는 길을 선택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은 원래 도전의 연속이니까...
그리고 나는 이곳에 내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이 삭막한 여정 속에서, 이 숨막히는 여정 속에서 내 숨통을 트이게 할 유일한 수단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마지막 퇴사를 준비하려 한다.
“여러분.. 저 퇴사할게요!(언젠가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