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적어서 내주세요~!"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써서 내봤을 장래희망, 한 글자로는 꿈.
초등학생 시절, 내 기억속 우리 반의 한쪽 벽면에는 큰 나무 그림이 있었다. 그 나무 그림의 가지들에는 반 친구들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그 사진의 밑에는 각자의 장래희망이 한 줄씩 적혀있었다.
"나는 이 다음에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어."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유명한 축구선수가 될거야."
"나는 이 다음에 커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거야."
반 친구들의 꿈이 나뭇가지에 걸린다. 그 꿈들은 모두 동사형태가 아닌 명사형태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 명사 하나하나가 우리들이 꿈꾸는 미래 모습이었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저마다의 꿈들 가운데 내가 적어서 제출한 꿈은 딱 세글자였다.
"공무원"
ㅎㅎㅎ...그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그걸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쓰지 않았을 단어인 공무원이라는 세 글자를 보고 아마도 퍽 당황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그 어린 시절의 나는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꿈이라고 생각해 써서 낼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우리 부모님의 가난한 마인드를 물려받은 탓이 컸을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게 최고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던 그분들의 영향으로 인해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아니 그랬었다.
그렇게 한창 뛰어서 놀아야 할 나이부터 지금껏 나는 안정이라는 단어에 평생을 얽매여왔다.
4년전 발전공기업에 입사한 그 순간, 아마도 어렸을 적 적어서 제출했던 그 꿈을 이뤄낸 셈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왜 이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걸까?
어렸을 적 꿈이었던 안정적인 삶, 누군가에겐 꿈의 직장이 될지도 모를 이곳을 나는 왜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치고 있는걸까?
답은 간단하다. 내가 그동안 착각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내 무의식 어딘가에 강력하게 내리꽂혀서 자리잡고 있었던 그 안정이라는 단어가 실은 나를 가둬놓는 감옥인줄도 모른채 그저 그게 내 꿈이라고, 그게 옳은길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삶속에서 그저 하루를 버텨내고, 정해진 급여를 꼬박꼬박 받으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삶...그게 나를 가두는 감옥인줄도 모른채 그렇게 스스로 갇히길 자처했다.
특별함이 없는 나에게 그게 가장 옳은 길이라고 여기며, 회사에 붙어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내게서 꿈을 꾸는 시간은 점차 사라져갔다. 정확히는 꿈이라는 단어도 잊은채 살았다.
눈앞에 놓인 바쁜 업무를 처리하고, 가끔은 도파민에 빠져 허우적 대는 삶, 하루를 버티기에도 아까운 24시간동안 꿈을 꾸는 시간은 그저 사치일 뿐이었다.
회사는 정해진 시간동안 나를 붙잡아 놓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의 보상을 내게 매달 쥐어줬다. 어떤 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보상을 주면서 내게 회사를 위해 더 많이 헌신해달라고 무언의 압박을 보내왔다.
가끔은 자기계발 목적으로 교육을 보내주며, 새로운 지식을 쌓는 시간도 주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교육이라는게 사실은 나로 하여금 더 나은 레벨을 가진 회사의 부속품을 만들어내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회사는 그렇게 그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목적으로 나를 이용할 뿐, 내게 결코 꿈을 꾸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다.
회사 사이트에 채용공고를 올려놓기만 하면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제발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끼리 치열하게 다툰다. 마침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그들에게 회사는 월급이라는 투자금을 통해 그들의 부속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한다.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시키기 위해 수년동안 그렇게 투자를 하고, 그들이 비로소 스스로 각자의 몫을 할 수 있도록 키워낸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서 투자를 해왔는데 갑자기 새로운 꿈이 생겨서 떠난다? 이것은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해다.
그렇기에 회사는 직원들이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결코 제공하지 않는다. 이게 내 결론이다.
“ㅎㅎ 지랄...그러면 너는 지금 회사가 그동안 너한테 해온 그 투자를 보란듯 배신한단 말이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꿈이 뭔데? 그렇게 대단한 꿈이냐??”
맞다.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난 그 투자를 보란듯 배신하려 준비 중이다.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지만 반드시 그럴 계획이다. 회사가 나를 욕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지라도 난 그래야겠다.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닌, 스스로 세상에서 일어설 힘을 쌓아 내 가치를 입증하는 일.. 그게 내 꿈이다. 그래서 나는 전문직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대단한 꿈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bullshit처럼 들릴지도 모를 말이지만 나는 꼭 그걸 해야겠다.
한번뿐인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매 순간순간이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꿈이라는 것을 위해 내 시간을 쏟아부어야겠다.
안정, 또 다른 말로는 감옥인 이 곳에서 반드시 탈출하고야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