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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Jan 22. 2019

SUGAR FREE CANDY

안 먹으면 될 것을

세상엔 수없이 많은 SUGAR FREE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탕에 관한 이야기. 설탕이 싫으면 사탕을 안 먹으면 될텐데 그러긴 아쉽고. 사탕을 먹는 당당한 명분이 없어, 전형적인 핑게에 불과할 이야기를 나누련다. 커피를 끊으면 되는데 그러진 못하고, 대신 늘상 아메리카노만 마시면서 시럽은 절대 넣지 말라는 애절한 주문과 상당 부분 비슷한 이야기.  


사탕을 입 안에 넣고 돌돌 굴려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전투 육아의 어려운 시기도,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도 이젠 내 것이 아닌데 그럼에도 사탕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내 맘 하나만 잘 추스리면 해결될 일상의 사소한 고민거리를 만날 때, 사탕 한 알의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직장인들이 커피잔을 손에 든 순간 이 정도면 그런대로 해볼만하겠다며 스스로를 추스리는 것과 닮아있다.


사탕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버릴 걱정이 없고, 초컬릿처럼 물을 켜지 않아도 되고, 커피보다는 위에 부담이 덜하고, 다른 왠만한 기호식품보다 저렴하다. 가지고 다니기에 전혀 무겁지 않아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차에 두고 꺼내 먹기도 하는데 그런 저런 편리한 이유로 사탕을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에는 댓가가 따르는데 문제는 설탕.

이제 나는 아무리 굶어도 꿈쩍하지 않는 나잇살과의 끝없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마흔이란 말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SUGAR FREE CANDY. 안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챙겨 먹어가며 구구절절한 변명을 하는 모순 투성이 불혹의 이야기.


사실 난 SUGAR FREE CANDY에 거부감이 좀 있다. 먹거리에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아이들 어린 시절엔 '사탕을 언제부터 먹이기 시작했느냐', '유기농 사탕을 챙겨 먹이느냐', '먹거리 재료를 유기농으로 하느냐' 같은 다양하고 민감한 선택지 앞에서 늘 위축됐었다. 아시다시피 아이들의 먹거리들을 유기농으로 장만한다는 건, 높아지는 식비를 감수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뜻한다. 생협, 초록마을처럼 멤버쉽으로 운영하는 유기농 식자재 매장의 회원이 되겠다는 의지이며 생활비에서 식비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각오이며 그것을 위해 다른 지출을 줄이거나 더 많은 수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정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발달이 순조롭지 못했던 작은 아이의 치료비는 내내 버거웠고 유기농이냐 아니냐를 따질 형편이 결코 못되었다. 대형 마트는 한여름, 에어컨 바람을 원없이 쐬고 싶을 때 가는 곳이었고 우리 동네 유기농매장은 어디에 있는지 실은 지금도 잘 모른다. 동네 작은 마트에서 저렴히 팔고 있는 것이 당장 그 날 저녁 메뉴가 되었고 그것에 감사했다. 애호박 두 개에 1,500원이라면 그 날은 해가 쨍쨍한 맑은 날임에도 그것으로 전을 부쳐 먹었다. 미각이 둔한 103호의 세 남자는 그것도 좋다며 싹싹 비워냈고 그렇게 식비를 절약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줄로 알았다.  


집마다 남편들이 가장 경계하는게 옆집 엄마들이라는데 내 고민의 시작도 옆집 엄마들이었던 걸 보면 영 근거없는 얘긴 아닌가보다. 이름도 귀여운 'Yummy Earth' 라는 사탕을 처음 접한 건 옆집 엄마 덕분이었고 여지껏 몰랐던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잡초같이 자란 내게 유기농 SUGAR FREE CANDY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우리 아이들 손에도 하나씩 쥐어주는 그것을 경험하고부터는 아이들에게 그냥 사탕을 먹이는 것이 좀 불편해졌다. 모르는게 약이었을까. 나누어 먹으려고 넉넉히 준비하여 들고 나간 츄파츕스를 꺼내어 놀이터의 아이들에게 나누는 행동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차라리 뻥튀기가 차라리 얼음물이 나았다. 사탕은 죄가 없는데 설탕은 죄가 있었다. 사탕은 변함없이 달콤했지만 그 달콤함이 부담스러워졌다. 츄파츕스는 적어도 놀이터에서만큼은 밉상이었다. 유기농 사탕을 챙겨먹일 돈의 여유가 없던 시절이라 죄없는 츄파츕스가 초라하고 별로였다.


외국에 오가는 일을 하게 되며 가진 새로운 습관은 청포도 사탕 싸들고 다니기였다. 영어캠프를 주로 하는 유학원 일을 하다보니 외국 갈 짐을 챙길 일이 자주 있는데 때마다 잊지 않은 건 롯데제과에서 나온 청포도캔디였다. 알이 굵고 상큼하며 천천히 녹고 왠만한 온도에도 잘 견디며 한 봉지 사들고 출국하면 내내 든든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기거나 더운 곳에서 지칠 때, 거래처와의 가격 협상에 실패했을 때. 차를 돌려나오며 가방 속의 청포도 사탕을 까먹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실은 별 것 아니게 느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크고 딱딱한 청포도캔디를 입 속에서 부지런히 굴려가며 안 좋은 기분을 지우고 원점으로 돌려 고민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경우, 사탕이 녹아 없어지기 전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청포도캔디 덕분인게 확실하다.


그런데 이번 출장에 청포도캔디를 빠뜨렸다. 짐을 급하게 싸더니 이리 됐다. 노트북이나 속옷을 빠뜨리지 않은게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청포도캔디의 빈자리는 컸다. 지내는 숙소의 전구를 아이들이 베개싸움 끝에 깨뜨렸거나 아이가 적응이 어려운 것 같은데 조금 더 신경써주셔야하는게 아니냐는 날선 요구를 들어야할 때. 청포도캔디가 절절하게 필요했다. 크고 단단한 사탕이 치아와 부딪히는 덜그덕 소리를 듣고 싶었다. 커피를 마시고 초코바를 사 먹었는데 그 기분이 안 났다. 연두색 번쩍이는 청포도캔디가 그리웠다. 


현지의 마트에 들렀다.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었다. 눈에 들어온 건 나와 좀 껄끄러운 사이였던 SUGAR FREE CANDY.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던 그것, 무설탕 유기농 사탕이 색색깔 예쁘게도 놓여있었다. 한 번쯤 꼭 사보고 싶었던, 우리 아이들도 먹여보고 싶었던 그것을 덥썩 집어들었다. 스트레스를 단 것으로 해결하려 들면서 집어든게 SUGAR FREE 라는게 아이러니하지만 이제라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경험은 핑게. 좀처럼 꿈쩍하지 않는 뱃살을 위함인데 실은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뱃살 걱정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면 사탕을 먹지 말고 사지도 말면 되는데 왜 굳이 2.5달러나 하는 사탕 한 봉지를 사서 들고 다니며 야금야금 없애고 있는지. 무설탕같지 않게 새콤하게 맛있다며 계약서에 서명하고 한 부씩 나누어 가지는 진지한 테이블 위에 사탕을 얹으며 맛 좀 보라 권하기도 하는데 서로 웃음 한 번씩 나누기에 사랑스러운 아이템이다.   


글을 쓰느라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내 일상에 꼭 필요함을 깨닫는데, 이렇게 모순투성이인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결국, 토닥거리게 되는 것. 그래그래 얼마나 고됐으면, 맡겨진 일을 책임감있게 해내기가 얼마나 고민스러웠으면 새하얀 유치로 아장거리던 아들들에게도 한 번 사준 적 없는 무설탕 유기농 사탕을 쟁여놓고 먹고 있는지. 생생한 체험 삶의 현장에서 뱃살 걱정없이 달고 지낼 수 있는 귀한 존재를 발견했음에 감사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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