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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Jul 22. 2024

도쿄의 토라

고향 시리즈 

첫 만남은 2013년 9월 12일. 나의 첫아기 고양이 사사키 토라. 하우스 메이트였던 케이코가 친구한테서 입양해 온 고양이가 토라였다. 케이코 친구의 친구가, 첫째 고양이가 있고 둘째를 들이려고 토라를 데리고 왔는데, 첫째랑 죽일 듯이 싸워서 당장 얘를 데리고 갈 사람을 페이스북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케이코가 소식을 전해 듣고, 하룻밤 만에 토라를 입양을 결정했던 것. 2개월밖에 안된 우리 왕자님이 뭘 얼마나 덤볐다고 쥐 잡듯이 잡았니, 첫째야! 때리면 토라 아프잖아!!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토라를 키울 수 있었으니 고맙다 첫째야. 토라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호랑이’라는 뜻이다. 갈색 고등어무늬였던 토라가 호랑이랑 닮아서 케이코가 작명했다.  

    

 케이코는 하코다테 고향집에서 어려서부터 유기견과 유기묘를 키워왔기에 반려동물에 익숙했다. 난 어렸을 때 요크셔테리어인 ‘와피’를 2년간 키웠지만, 엄마가 다른 집에 보내버린 아픈 과거 때문에 동물을 좋아해도 키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아지랑 고양이 중에 고르라면 난 강아지파. 고양이는 무서웠다. 눈도 무섭고, 울음소리도 무섭고. 하지만, 토라를 처음 만난 날. 난 느낄 수 있었다. 오늘부터 나는 완전 고양이파!! 

작고 귀엽고 앙칼지고 보드랍고 미치겠다 진짜. 퇴근하면 집까지 마하의 속도로 달려와서 토라를 둥가둥가. 귀찮아하든 말든, 내 새끼를 둥가둥가. 나의 첫아기고양이 (엄밀히, 케이코 고양이) 잘나고도 이쁘다. 둥가둥가. 옆방에 사는 엄마 친구 포지션인 나였지만, 토라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 항상 뚱한 표정의 토라 사진을 회사 동료들에게 보여주면 “어머, 최상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라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반응을 해 줬다. 귀엽다는 뜻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마무리.       


 고양이는 외로움을 안 탄다고들 하지만, 아니다. 강아지보다는 덜해도, 고양이도 외로움 탄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열쇠 따는 소리만 들려도, 이미 중문에 와서 냥냥 거리고 난리. “토라야. 누나가 왔다.”라며 문 열고 들어가면, 꼬리를 세우며 발등에 얼굴 비비고 난리부르스. 뒤집어 깐 배를 만져주는 퍼포먼스까지 마치는데 약 2~3분여. 그 뒤로는 내가 언제 너를 기다렸냐는 듯이 궁둥이를 휙 돌려서 방으로 먼저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아아. 애가 탄다 애가 타. 너의 사랑에 목마른 나는 애가 타!! 진부한 표현이지만, 고양이처럼 밀당을 잘하는 여자가 왜 매력적인지 알 수 있었다. 난 간식만 줘도 침 흘리는 강아지 스타일이라 영원히 모를 일이지만.      


 하루는 방에서 티브이를 보면서 토라 배를 문질문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손을 ‘콱’하고 무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아파서, 나도 모르게 삐져버렸다. 토라가 이 공간에 같이 존재하지 않는 척을 하면서 티브이만 보고 있었는데, 이 여우 같은 냐옹이가, 얼굴은 안 보고, 궁둥이만 슬금슬금 내 허벅지에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행동이 너무 웃겨서, 콧구멍이 벌름 벌름하면서도 냉정한 척하며, 토라 궁둥이를 얼음판 컬링볼처럼 반대편 벽 쪽으로 싹 밀어버렸다. 그렇게 밀쳐내도 다시 슬금슬금 와서 궁둥이를 갖다 대던 너. 킬포는 절대 얼굴은 보지 않고, 벽 쪽을 바라보면서 궁둥이만 그렇게 들이밀었다는 것이다. 한 네 번쯤 반복하다가,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 토라를 품에 가득 끌어안고 뽀뽀하다가, 또 깨물렸다. 그래도 이때는 가볍게 앙앙. 물어주셨다. 자비로운 토라님. 손에 꼽히게 행복한 추억이다.      


 토라는 고양이용 습식 캔, 간식, 츄르 모두를 싫어했다. 오직 건조 사료만 먹었다. 그런데도 왜 덩치가 컸는지는 미스터리. 역시 고양이 집사인 히로미 선배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야. 이게 고양이냐 호랑이지.”라며 놀렸는데, 그때마다 나는 “네델란드인들 평균신장이 180m인 것처럼, 토라도 골격이 큰 거라고.”라고 항변하면서 만져 봐도 뱃살이 출렁출렁. 나와 케이코도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이므로, 우리 집 수맥이 그렇게 흐른 걸로 마무리. 토라의 두 번째 생일엔, 습식 캔에 츄르 토핑을 해서, 마른 멸치로 촛불까지 꼽아서 케이크를 만들어줬는데 싫다고 앙탈을 부리다가, 뒷발로 걷어차 버렸다. 엉엉. 넌 밥만 먹고사냐 이것아!! 길가의 고양이 친구들은 배고프게 사는데!! 촛불 대용으로 구입한 멸치 한 봉지는 결국 내가 멸치볶음을 해 먹고 치웠다. 

     

 토라는 여름에는 가까이 잘 오지 않고, 겨울이면 내 방에 잘 와 있었다. 무심하게 내버려 두는 케이코와는 달리, 난 눈앞에만 있으면 달라붙고 뽀뽀하니 여름엔 오기 싫었겠다 싶네. 항상 동물을 키워온 케이코는 토라를 사랑하면서도 나처럼 유난은 안 떨었다. 그래도, 가끔 자려고 누웠을 때, 케이코 방에서 혀 짧은 소리로 토라를 부르며 “그랬쪄요. 아웅. 그랬쪄요.” 같은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었다. ‘그래, 너도 사람인데 토라가 귀엽지. 암요.’라고 생각하며 뿌듯하게 잠들었다. 겨울에 내 방에 왜 자주 왔나 생각해 보니, 추위를 안타는 케이코 방은 온열 기기를 잘 안 트는데, 난 전기장판에 스토브까지 틀고 있으니 따뜻해서 왔던 것 같다. 이놈의 자식. 영특한 자식.      


 고양이들이 엄마로 생각하면 머리맡에서 몸을 동글게 말아서 자고, 형제나 만만한 상대로 생각하면 다리 가랑이 사이에서 잔다더니 (아닐 수도 있음), 토라는 케이코랑 잘 때는 머리 옆에서 자고, 나랑 잘 때는 다리 사이에서만 잠을 잤다. 토라의 루틴은 밤에는 케이코 방에서 자고, 꼭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다가. 물 찹찹 마시고, 사료를 먹은 다음에 내 방으로 건너오는 것이었다. 전기장판을 켜두어서 따뜻해진 침대 위로 올라와서, 내 다리 사이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잤다. 토라가 그렇게 잠들면 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두 시간 정도 더 자다가 살며시 몸을 빼고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했다.      


 어느 겨울 아침, 잠든 토라를 깨우지 않기 위해 이불 사이에서 다리를 빼고 나왔다. 불도 안 켜고 아스라이 들어오는 아침 햇살 속 잠든 토라의 모습을 보았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토라가 애틋하게 보였다. 침대에 기대서 가만히 토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쌕쌕거리며 숨 쉬는 귀여운 콧구멍, 두툼하고 부드러운 앞 발, 반질반질 동그란 머리통. 한참 동안 지켜보며 조건 없는 사랑을 느꼈다. 나중에라도 아이가 생기면 이런 마음이 들까.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넘치는 사랑을 참지 못하고, 토라 목에 얼굴을 비벼대니, 토라가 “냐아아~” 하면서 깨어났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토라는 그루밍을 시작했던 그런 평범하고도 행복했던 아침. 


 2016년 3월 18일. 출근길에 내 방 옷장 위 지정석에 누워있는 토라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침에 침대로 내려오지도 않고,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턱을 쓰다듬으니 좋다고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눈을 반쯤 감길래, 별일 없겠지 싶었다. “토라야. 누나 회사 갔다 올게. 케이코랑 잘 놀고 있어.” 당시 케이코는 일을 쉬고 있었다. 금요일 밤이어서, 은영이랑 신주쿠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오다큐선에서 케이코의 문자를 받았다. “할 말이 있으니까 역 앞으로 데리러 갈게.” 문득, 아침에 기운이 없던 토라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불길한 예감이 덮쳐왔다. 비가 오던 밤이었는데, 우산을 쓰고 있던 케이코 얼굴이 퉁퉁 부은 것을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 내가 출근하고 두 시간쯤 뒤에 옷장에서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건너가 보니, 토라가 굴러 떨어져 있었다고. 마침 집 앞에 동물병원이 있어서 안고 뛰어갔는데, 이미 심장마비로 사망한 상태였다고 했다. 점심때 말하려다가, 어차피 회사에 있어야 하는데 마음만 심란할 것 같아서 귀가시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래도, 케이코가 일을 쉬고 있어서, 병원이라도 빨리 간 것이 마음에 위안이 됐다. 만약, 둘 다 출근했다가, 한 명이 먼저 퇴근해서 집에서 차갑게 식어있는 토라를 봤다면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케이코 품에서 보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토라의 엄마는 케이코가 맞는구나. 고마워.      

 

 사람 혹은 동물이 죽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집에 와서 토라의 차가운 몸을 만지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밤새 방에서 둘이 토라를 만지며 울다가, 화장터를 수배했다. 일요일 저녁에야 화장을 할 수 있었다. 토라가 좋아하던 하트모양 사료와 도라야키를 먹을 때 가끔 와서 팥고물 한 알씩 얻어먹고 가던 생각에 그것도 하나 사고, 꽃다발과 함께 화장시켜줬다. 지금쯤 부잣집 딸로 환생해서 몽클레어 입고 영유 다니면서 잘 살고 있겠지. 이 콘셉트이라면 한국에서 환생했어야 하는데. 일본 부잣집 딸은 스타일이 또 다르단 말이야.  

    

 그 뒤로도, 펫로스 증후군에 마음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토라를 만나서 함께 했던 2년 반이란 시간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헤어지는 것이 무서워서 함께 하는 행복을 포기 할 수는 없다. 조건 없는 순도 100%의 사랑을 알려줬던 토라. 소중한 나의 첫 냐옹이. 오늘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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