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같은 초4

by 소봉 이숙진


해마다 생일이 오면 아이들이 신경 쓸까 봐 걱정이다.

거리두기 시점에서 외식도 어려워 결국 테이크 아웃해서 집에서 식사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니 거실이 복잡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가 꽃바구니를 건네면서,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한다.

자기가 시장에서 꽃을 사서 바구니에 꽂았다고 한다.

꽃색과 높낮이를 잘 배려해서 꽂은 솜씨가 꽃꽂이 배운 사람에 버금간다.

알뜰함과 정서적인 품성을 곁들여 잘 가르친다고 며늘아기에게 칭찬을 해 주고, 손녀에게는 상을 주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의 무늬가 예쁘게 잘 배워 나가야 나중에 결혼해서도 양가 부모님께나 주위 어른들께 사랑 받으리라는 믿음에 흐뭇하다.




그런데, 이 초 4짜리가 하는 짓이 꼭 중2처럼 굴어서 가소롭기 짝이 없다.

생일 케익에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라니까, 고개를 저으며 다섯살짜리 동생에게 부르라고 한다.

저는 이제 다 커서 노래는 좀 그렇다는 듯이, 유치원생 동생이 노래 부르는 걸 유치하다는 식으로 빙그레 웃으며 눈을 내리깔고 바라볼 뿐이다.

"요즘 초사병이 와서 사진도 안 찍으려고 하고 노래도 안하려고 하고 꼭 중이병처럼 굴어요."

저 엄마의 농에 온 가족의 폭소가 한바탕 파도쳤다.

식사 시간에도 아직 배가 안고파서 안 먹겠다며, 작은 방에 들어가서 혼자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던 바나나우유와 각종 요플레를 잔뜩 사 놓았건만, 한번 쓱 스캔하고는 굳이 생수를 먹겠다는 심사는 또 무엇일까.

냉장고 문을 열어두고 "간택하옵소서!" 하는 할미의 즐거움을 댕강 잘라버리고 생뚱맞게 생수타령이 참으로 낯설다.

띵 띵 띵, 문을 닫아 주시옵소서! 하는 냉장고 하소연보다, 이 할미의 부풀었던 심장 꽈리 꺼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다이어트하는 것도 아니고 벌써부터 뭣땜에 언니들 흉내를 내는지 서운하기까지 하다.


좋아하던 젤리도 안 먹겠다고 모두 도리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응석으로 치부하는 나는 또 무엇인가.




문득 내 유년의 풍경이 떠오른다. 외동아들인 오빠에게 늘 어머니는 '을'이셨다.

"홍시 하나 줄까?"

" 하나만 주소!"

근데 어머니는 얼씨구나 하고 홍시 다섯개를 내 온다. 버릇없고 철없는 아들내미 왈

"하나만 달라니까 왜 이렇게 많이 줘요. 안 먹어욧!"

하면서 오기를 부린다. 그때 어머니의 실망하던 그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일까?




Y염색체만 키워 본 필자는 당혹스럽다. X염색체의 사춘기를 지켜본 바가 없으므로 생경하여 조심스럽다.

뭐든지 많이 사 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었다.

이젠 확실한 개체로 성장하는 것 같다.

뭐가 그리 심각한 지 눈동자에 생각이 수만개다.

커가는 손녀의 모습에 흐뭇한 설렘이 일렁인다.

잘 배우고 잘 자라서 어디서나 귀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생일 꽃.png

(손녀가 만들어 온 꽃바구니)


큰아들은 며칠 전부터 내가 오른쪽 검지가 아프니 새로나온 키 보드를 사 줄까 묻는데, 새로 익히려면 번거로울것 같아 사양했다.

새로운 문명의 도전에 소극적인 탓도 있지만, 주로 노트북을 쓰고 있으니 내키지 않았다.

혹시 나이 탓일까 고개를 갸웃해 보지만, 소극적인 성향은 맞지 싶다.

며늘아기가 또 패딩을 사진 찍어 보내며 어떠냐고 묻길래 패딩이 많이 있지만, 또 이곳저곳 고민하며 헤매 다닐것 같아 좋다고 했다.

아이들 편안하게 해 주는것도 현명한 어른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생일선물2.png


역시 선물 받으니 기분은 좋다. 거위털이 아주 상품(上品)이라 엄청 가볍다.

하지만, 거리두기 2.5 격상으로 어디 입고 나갈 곳도 없으니 안타깝다.

벌금을 내더라도, 며늘아기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을 꾹꾹 눌러둬야겠다.

이것이야말로 모두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닐까 한다.

둘째는 요즘 밖에 잘 못나가니 비타민 D가 부족하다고 비타민D와 유산균과 루테인 지안잔틴과 B.B크림을 사왔다. 저 약을 한 번에 다 털어넣으면 소화가 잘 될까 걱정이지만, 아이의 걱정이 가상하여 열심히 복용해야겠다. B.B 크림은 집콕하고 있어서 화장을 안하고 사는데, 집에서도 화장을 엷게 하라는 뜻인것 같다.


생일선물.png


아들도 다 크니 남편보다 더 조심스럽다.

나름대로 직장에서도 한자리 꿰차고 있으니 말도 '해라 체'보다 '하게 체'가 나올때도 있다.

아들들이 어릴때도 나는 늘 "크게 될 놈, 잘 될 놈" 하고 놀렸으니 에미 마음을 잘 알 것이리라.

집에서부터 떠받들고 존경해줘야 사회에 나가서도 활발히 활동할 거라 믿는다.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벌써 나름대로 컸다고 심각해지는 초사병 걸린 손녀를 보는 재미가 참 쏠쏠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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