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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Nov 10. 2021

절도 있는 생활

인터넷 창을 닫을 때면 종종 방문 기록을 클릭한 뒤 인터넷 기록 삭제를 실행합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온갖 뉴스, 혼을 쏙 빼놓는 영상들에서 비로소 헤어 나왔으니 이제 이것들로부터 내 정신을 좀 구해주십사 하는 의식 같은 거죠.

요즘 '절도'라는 단어에 마음이 쏠립니다. 절도란 사전적 의미로 일이나 행동 따위를 정도에 알맞게 하는 규칙적인 한도 혹은 조화와 완전을 중시한 그리스 정신이 일반적 준거로 삼은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중용이라고 하였다지요. 한 마디로 해야 할 때 하고, 그쳐야 할 때 그치는 것입니다.


지인을 만났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완료했더니 만사에 의욕이 날아가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토로합디다. 농반 진반이다 싶었죠. 그런데 그게 저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백신 1차 접종 때부터였을까요? 하여튼 그 무렵부터 저는 생활의 절도를 잃어버렸습니다. 해야 할 건 도무지 할 수 없고 하지 말아야 할 건 또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악순환 속에서 살았죠. 절도를 잃어버린 저 자신을 보는 괴로움에 휩싸이니 해야 할 걸 할 정신머리가 안 생겼어요. 하지 말아야 할 건 근데 왜 멈춰지지 않는 건지 모르겠네요. 

일주일 전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났더니 이번엔 다음날부터 머리가 미세하게 지끈거리는 게 몸이 말이 아니더군요. 몸이 아프니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해야 할 건 많은데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 극심한 의욕상실에 시달렸습니다. 아몰랑 배 째라를 실행했죠. 피가 조금씩 말라 가는 걸 느꼈습니다. 


이대론 정말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제 아침에는 남은 에너지를 모두 쥐어짜 낸 뒤 몸뚱이를 끌고 겨우 인근 도서관에 안착했습니다. 좌뇌 측두엽이 지끈거려 왼손으로 머리를 거머쥐고서 책을 붙들었습니다.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가 컨디션 난조에 부채질을 했지요. 그때 지인 한 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점심을 사준 다기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따라나섰습니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내내, 또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지요. 말을 주절주절 해서 그런가 그래서 혈압이 내려간건지 어쩐지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글쎄 머리가 맑더라구요. 저도 모르는 사이 며칠간 지속되던 두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 상쾌한 기분이 대체 얼마만인지요. 지인께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고픈 정도였지요.


어젯밤에는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말짱한 컨디션으로 잠자리에 드니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요.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눈 온다! 눈!"하는 소리에 놀라 문득 눈을 뜨니 벌써 새벽이네요. 창 너머 어둠 속에선 하얀 첫눈이 생각지도 않은 올해의 첫 눈이 펑펑 날리고 있더라고요. 이 좋은 광경을 가만 지켜보고 있을 순 없죠. 눈을 맞자고 우산 대신 우의를 걸치고서 산책을 나섰습니다. 살아 있으니 이리 좋은 걸, 컨디션이 좋으니 이리 좋은 걸, 춥고 어쩌고 해도 마냥 좋기만 하더라고요. 


얼마 만에 의욕도 조금씩 샘솟아 나는 걸 느낍니다. 오늘 아침에는 일찌감치 공부를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그뿐이 아니게요,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험 준비를 한다고 오늘 짠돌이가 거금까지 투자하는 일을 벌였습니다. 본전을 뽑자면 부지런히 움직이게끔 되게 말이죠.

오래간만에 상쾌한 컨디션으로 하루를 맞이하니 살 것 같습니다. 엉망진창 생활 구덩이 속에서 다시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할 건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건 하지 않는 절도가 참으로 절실합니다. 굳이 인터넷 창을 닫으며 방문 기록을 삭제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어디 내놔도 그대로 부끄럽잖을 일상을 꾸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절도 있는 생활을 하자가 한동안 저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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