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시절, 같은 팀 직원 열몇명이 강원도로 MT를 간 적이 있었다. 승용차 여러 대에 나눠 타고 강원도 일대를 돌며 풍광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내친 김에 말로만 듣던 정선 카지노에도 들르기로 했다.
카지노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려 놀라웠다. 슬롯머신이라고 하나, 호기심에 그런 걸 해 보고 싶어도 빈자리가 없었다. 보아하니 한 사람이 여러 대의 기계를 차지하고서 레버가 자동으로 넘어가게끔 조작한 뒤 동전만 채워 넣고 있었다. 뜨내기들이 낄 자리는 없었다. 돈이 물 쓰듯 쓰이는 광경이었다. 나는 겨우 딜러가 벌이는 게임에 홀짝을 거는 정도로 만족했다. 내 피 같은 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녁에는 정선 산자락에 자리한 콘도에서 묵어갔는데 강원도 산세의 기운이 물씬 뿜어 난 조용하고 아늑한 장소였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나는 콘도 거실로 나왔다. 아침 산책을 다녀올 작정이었다. 또 얼굴에 물도 좀 묻히고 뭐라도 찍어발라야 안 되겠나 싶었다. 거실 탁자에는 나보다 먼저 일어난 김 과장님이 홀로 우두커니 모닝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김 과장은 10년 차로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큰 거래처 위주로 담당했는데 신기하게도 매년 실적이 좋았다. 보통 한해 실적이 좋으면 다음 해 그만큼 목표치를 올려 받기 때문에 계속 실적이 좋기가 쉽지 않았다. 대단한 분이었다. 참고로 김 과장은 아들 셋의 아빠였는데 회식을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회식 때마다 번번이 티가 날 정도로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자정이 되어가면 기어코 선배를 집에 보내려는 후배들과 한사코 한 잔만 더를 외치는 김과장 간의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심지어 김과장의 집은 경기도 어디 시골에 위치하고 있어 대리기사님 구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후배들의 간절한 바람이 대리콜 센터에 어렵사리 닿아 마침내 김 과장을 태우려는 대리기사가 도착하면 그는 축처진 어깨로 귀갓길에 올랐다. 그 표정이 무척 슬퍼 보여 잠시나마 인생이 뭔지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엠티길에 오른 김 과장은 내내 신나 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벌써 산책도 다녀왔단다. 그런 김 과장이 막 자다 깨서 나온 나를 쳐다보더니 놀랍다며 한 마디를 던졌다.
"와~ 너는 자다 일어난 거랑 회사에서 보는 거랑 똑같다야~"
아놔... 이거 칭찬이야 욕이야? 순간 헷갈렸다. 근데 또 내가 누군가, 금방 답을 찾아냈지.
정답은 바로
'그때그때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