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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Jun 12. 2020

아이쿠 앵두가 늦었네

앵두가 다 익은 계절+ 박하도 봐 주겠니

2주 만에 학교에 들렀습니다. 격주 금요일마다 실험수업이 있습니다. 나이로 보면 제가 수업을 해도 열 번은 더 했어야겠지만 그거슨 아니고 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입니다. 오늘은 귀여운 마우스를 가지고 행동실험을 했습니다. 제 검지, 중지 손가락을 합친 크기인데 넘치는 호기심에 발발발발 돌아다니는 아주 새하얗고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아마 얘들의 발가락을 보신다면 너무 귀여워서 까무러칠 겁니다. 조그마한 발로 케이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게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다행히 오늘은 아이들의 희생 없이 실험이 끝났습니다. 지난 번, 지지난 번에는 해부를 해야 했는데, 아무리 실험이라도 귀엽다고 쓰담 쓰담하던 애들이라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귀여운 마우스와 작별하고 중앙 현관문을 나서려던 찰나, 앗차차차차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얼른 몸을 돌려 다다다닥 뛰어서 반대쪽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보물창고 약초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눈 앞에 녹음이 펼쳐집니다. 

제가 공부하는 단과대학 건물에는 약초원이 딸려 있습니다. 사이즈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교과서에서 본 유명한 약초는 웬만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급한 게 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응당 있어야 할 게 있어야 합니다. 바로 빠알갛게 익어 상큼하고 입에 침이 고이도록 신 앵두입니다.

우리 귀여운 할매 생신 무렵이면 집 앞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달립니다. 어릴 적에는 익을 만하면 따먹고 익을 만하면 따먹어서 빨간 앵두를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늘 분홍빛을 띠기가 무섭게 얼른 입으로 쏙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어라? 약초원 입구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는데, 나무도 크고 앵두도 커서 맛이 참 새콤달콤한 앵두였는데 오늘은 앵두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도 안 남아 있습니다. 아..... 벌써 누가 다 따갔습니다. 아주 깨끗하게 따 갔습니다. 한 발 늦었습니다. 작년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서 쉬는 시간만 되면 내려가설랑 야금야금 제가 다 따먹었습니다. 디저트를 따로 사 먹을 필요 없습니다. 약초원에 다 있습니다. 약초원 대빵인 은퇴한 노교수님이 앵두의 행방을 찾으시길래 순순히 자백했습니다. 노교수님은 '아 너였냐? 많이 먹어라, 니가 다 따먹어라 알았지?'하고 웃고 마셨습니다. 물론 저는 앵두만 노리지 않습니다. 살구, 오디, 산사자가 언제 익나 군침을 흘리며 두고 봤다가 그때그때 날름날름 따먹습니다. 이 좋은 걸 왜 다른 학생들은 모르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대신 저는 약초원에서 수시로 풀을 맵니다, 호미가 어딨더라.


그랬는데 올해는 없습니다. 이런이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찰나, 다른 곳에 자그마한 앵두나무가 있던 게 퍼뜩 생각났습니다. 걸음을 깡총 옮겨 가 봤더니 역시 요 녀석들은 아무도 건들지 않았습니다. 얼른 하나 톡 따서 입에 넣었는데 글쎄 단 맛이 하나도 없고 시기만 합니다. 작년에는 큰 앵두나무 못잖게 달았었는데 올해는 어이된 일이지요 이거 이거? 하는 수 없습니다. 일단 따 가서 설탕에 폭 담갔다가 빨간색 앵두 차(茶)로 만들어 먹는 수밖에요. 주섬주섬 땁니다. 생각보다 양이 많습니다. 어쩌나 했다가 가방에서 손수건을 찾아냈습니다. 얼씨구 손수건에 한 톨 한 톨 톡톡 따서 싸안았습니다. 어라? 작년에 못 보던 앵두나무가 옆에 또 있네요. 요 녀석은 아까 것 보다 과즙이 많습니다. 입에서 톡 하고 터집니다. 요 녀석도 앵두 차에 당첨됐습니다. 매우 축하.

앵두를 요만큼이나마 얻었으니 올해도 성공입니다


앵두와의 볼 일은 끝났습니다. 이번엔 박하 차례입니다. 약초원을 찾는 이유의 5할은 바로 요 박하 녀석 때문입니다. 박하는 꿀풀과(Labiatae) 식물인데 기둥을 가만히 보면 네모나게 각져 있습니다. 꿀풀과 특징입니다. 약초로 쓰는 박하는 학명이 Mentha arvensis L. var. piperascens M.입니다. 박하 종류가 엄청 다양하기 때문에 약재로 쓸 때는 기원을 반드시 따져야 합니다. 차로 먹고 케이크에 토핑하고 그럴 때는 기원식물이 아니라도 누가 멱살 잡고 하지 않겠지만 약재로 쓸 때는 다릅니다. 약효와 연결되기 때문에 이게 엄격합니다. 한국에서 약재가 되는 박하의 기원식물이 바로 저 Mentha arvensis입니다. 중국 박하라고도 불리는데 그 박하가 바로 우리 약초원에 있는 이 박하입니다. 저는 머리를 많이 쓰는 유형이라 늦은 오후가 되면 기가 상초로 붕붕 뜹니다. 상기(上氣)된 걸 어떻게 아냐하면 얼굴이 뜨끈뜨끈하게 붉어지고 섬어(譫語)라고 입에서 막 헛소리도 나오고 그럽니다. 그리고 괜히 실실 대며 쪼갭니다. 정상이 아니지요. 이럴 때 특효약이 바로 박하입니다. 박하를 닷 잎에서 엿 잎 정도 따설랑 뜨거운 물에 넣고 서른 센 후 마십니다. 캬 열이  쭉쭉 내려갑니다. 쭉쭉쭉 쭉쭉 막혔던 머리도 뻥 뻥 뚫립니다. 오늘도 요요 박하가 잘 계신가 어쩐가 해서 안부 물으러 왔습니다. 근래에 비가 그래도 꽤 왔다고 생각했는데 박하를 보니 줄기도 억세고 잎도 약간 노랗게 바랜 것들이 많습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번쩍 합니다. 헤헤~ 작은 녀석들로 얼른 세 뿌리를 뽑았습니다. 집에 애플민트를 얻어 온 게 있는데 그 옆에 이웃해서 심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학교 안 올 때도 박하차를 마실 수 있잖겠습니까? 제가 낸 아이디어지만 아조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런데 일개 학생이 약초원에껄 이렇게 막 함부로 뽑아와도 되냐고요? 요 것도 이미 제가 노교수님과 또 그 아래 대빵 교수님께 다 허락받아놨던 사항입니다. 작년에. 음음. 아직 유효하쥬 교수님?

박하야 집에 가자

오늘 할 일을 이만 다 마쳤습니다. 올해는 큰 나무 앵두를 못 봐서 아쉽지만 그래도 작은 나무들 앵두를 꽤 얻었습니다. 벌써 손수건이 빨갛게 물들었네요. 집에 가서 설탕에 버무려 담갔다가 주말에 시원한 음료로 만들어 마실 겁니다. 다 계획이 있습니다. 박하는 화분에 꼭꼭 눌러 심어 사랑으로 수시로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가볍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와 다다음주에는 시험이 계속 매일 종일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지네요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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